사회 전국

[클릭 이 사건] 가짜 그림에 속아 30억원 날린 재력가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5.12.30 17:11

수정 2015.12.30 17:11

리히텐슈타인 '위작' 진실게임..화랑운영자·모사품 중개자도 모두 무죄
"지인이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작품을 200억원에 판다니 사세요. 경매로는 최소 400억원에 팔린답니다."

지난 2008년 8월 재력가 김모씨는 치과의사 장모씨 부부의 제안을 듣고 솔깃했다. 세계적인 팝아트 작가 로이 리히텐슈타인(1923~1997년)의 1965년작 '음, 어쩌면(M-Maybe·사진)'을 절반 값에 팔겠다니….

장씨 부부는 "계약금으로 30억원을 주면 프랑스 파리에 있는 그림을 국내로 가져와 감정받을 수 있도록 해주겠다"면서 "진품이 아니면 계약금을 돌려주고 앤디 워홀의 자화상 작품을 대신 주겠다"고 말했다.

이들 부부는 영국 경매회사 크리스티에 e메일도 보냈다. '로이 리히텐슈타인의 M-Maybe 작품이 존재한다면 가격이 어느 정도냐'고 묻자 '미화 3000만~5000만달러 정도가 될 것'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치과의사지만 화랑을 운영하던 장씨 부부의 제안을 김씨가 마다할 이유는 없었다.

김씨와 장씨 부부는 크리스티가 직접 와서 감정하고 매매까지 확정해준다는 내용의 확약서를 썼다. 김씨는 다음날 장씨 부부 딸 명의의 계좌로 10억원을 보냈고 나흘 후 수표로 20억원을 건넸다.

장씨 부부는 파리에 거주하던 미술품 수집가 함모씨에게서 그림을 전달받아 김씨에게 넘겼다.

그런데 보름여 뒤 청천벽력과 같은 소식이 들려왔다.

김씨 자택에 감정하러 온 크리스티 직원이 "캔버스가 그 시대 캔버스가 아니고 감청색 물감도 1960년대 것이 아니다"는 결과를 내놨기 때문이다. 그림은 진품 크기(101㎝×101㎝)보다 1㎝씩 작았다. 이 그림은 함씨가 어느 팝아트 가구점에서 사다가 집에 보관하던 모사그림이었던 것. 이미 장씨 부부는 30억원 중 25억원을 함씨에게 건넨 상태였다.

장씨 부부는 함씨를 특정경제범죄가중처벌법상 사기죄로 고소했지만 지난해 3월 무죄가 확정됐다.

'그림이 모사품이라는 사실을 전혀 알지 못한 채 속였다는 취지의 장씨 부부 진술내용에 신빙성을 인정할 수 없다'는 이유였다.

또 화랑을 운영할 정도로 전문 식견을 갖춘 이들이 함씨의 말만 믿고 진품에 대한 아무 확인을 하지 않았다는 점도 지적됐다.

오히려 함씨는 "장씨 부부는 이미 그림이 모사품이라는 설명도 들었고 내게 그림 매매를 의뢰하지도 않았다"면서 "그림이 실린 1969년 전시도록을 달라고 해 선물로 줬을 뿐이고 장씨 부부가 김씨에게 진품인 것처럼 속인 것"이라고 주장했다.

또 "장씨 부부에게서 받은 25억원은 이전에 판 작품에 대한 미수금이지 이 그림과 상관없다"고 덧붙였다.

이번에는 장씨 부부가 특경가법상 사기 혐의로 법정에 섰다. 계약금을 돌려주지도 못했고 다른 화가 그림을 돌려주지도 못한 상태였다. 법원 1심과 2심은 장씨 부부에게도 모두 무죄를 선고했다.

1심은 "그림이 모사품임을 전혀 알지 못했다는 취지의 피고인들 주장에 일부 모순되고 석연치 않은 면이 있지만 계약금을 받은지 2주일만에 스스로 그림 감정을 부탁했고 함씨에게 준 25억원이 다른 미술품 거래 미수금으로 지급됐다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판시했다.


검찰은 항소했으나 함씨가 법정에 출석하지 않아 새로운 증거 확보는 사실상 불가능했다.

항소심도 원심을 유지했다.


30일 법원에 따르면 서울고법 형사10부(허부열 부장판사)는 "모사품인줄 알면서 25억원을 굳이 함씨에게 줄 필요가 없었다"면서 "계약금 반환 명목으로 가로챈 5억원은 이 사건과는 별개의 행위"라고 판시했다.

hiaram@fnnews.com 신아람 기자
[클릭 이 사건] 가짜 그림에 속아 30억원 날린 재력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