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진 감독 연출로 주목
"부부끼리 무슨 전화를 해?"(소피아)
"너 남편을 사랑하는구나! 안타깝게도…. 같은 집에 사는 남자를 사랑하다니."(자스민)
매일 밤 전화기를 붙잡고 사랑을 말하던 때가 있었고 떨어져 있는 시간이 괴로워 결혼했지만, 세월이 흐른 지금 현실은 이렇다. 하지만 다 그러고 사는 세상. 슬퍼할 필요는 없다. 연극 '꽃의 비밀'은 그 공감 지점을 제대로 포착해 웃음으로 승화시킨다. 20~30대가 주를 이루던 공연장에 중년 관객들이 들어차고 객석에 폭소가 끊이지 않는 이유다.
배경은 이탈리아 북서부의 한 시골 마을. 남편들이 죽고 못사는 유벤투스의 축구경기를 보러간 사이 아내 네 명이 한 집에 모인다.
그런데 눈이 펑펑 내리던 이날, 지나가 특히 더 불안해 보인다. 때마침 모니카의 전화벨이 울리고 남편이 다 죽어가는 목소리로 살려달라고 말한다. 지나는 이내 자신의 '범행'을 털어 놓는다. 바람난 남편에게 복수하려고 몰래 차의 브레이크를 고장냈는데 다른 남편들도 그 차에 타게 된 것. 충격에 휩싸인 아내들 사이에서 맏언니인 소피아가 정신을 차린다. 내일은 남편들의 보험 가입을 위한 건강 검진이 있는 날. 이렇게 된 이상 보험금을 챙겨야 한다. 이들은 각자 자신의 남편으로 변장하기로 결심한다.
연극과 영화를 오가는 장진이 연극 '웰컴 투 동막골'(2002년) 이후 13년 만에 내놓는 신작이다. 장진은 현실에서는 심각한 범죄인 상황을 재치있게 요리해 무대 위에 요절복통 코미디극으로 옮겨놨다. 웃지 않고 못 배기는 남장(男裝) 장면은 이 작품의 백미다.
가벼운 코미디극에 머무르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풍자와 해학이 있어서다. 신나게 웃고 즐기는 가운데 사회 모순에 대한 비판적 시선이 무게감을 더한다. 보수적인 사회의 굴레 안에서 가정폭력, 불륜 등을 감내해야 했던 네 여성의 아픔과 마주했을 때 진한 연민을 느끼게 된다. 다소 힘 빠지는 반전 결말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을 그대로 보여주는 듯하다.
개성 뚜렷한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앙상블도 돋보인다. 김연재, 한예주, 한수연 등 대학로의 실력파 배우들이 모여 시너지를 냈다. 뮤지컬 배우로 익숙한 이창용과 오소연도 기대 이상의 역할을 해냈다. 공연은 내년 1월 31일까지 서울 대학로 DCF 대명문화공장. 4만~5만원. (02)766-6506
이다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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