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 상처를 고백하다

데이비드 보위를 존경한다고 말하는 솔직한 예술가, 타임스스퀘어를 수놓은 아름다운 네온 작품의 제작자, 크리스티 경매를 통해 자신의 작품을 43억원에 판매한 성공한 예술가. 트레이시 에민(53)은 이슈의 주인공이다. 시골에서 혼혈아로 나고 자라 영국 현대미술의 중심인 런던에서 yBa(young British artists)의 주요 작가가 되기까지, 나아가 세계미술계에서 '고백의 여왕'으로 회자되는 스타 작가가 되기까지 에민은 점잖은 미술계에 폭탄을 터뜨리며 파편더미를 기반으로 올라섰다.
세계 미술계가 트레이시 에민의 작품에 열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작품의 소재로 자신의 사생활을 드러내는 것은 사실 미술계에서 공공연히 경시돼 왔다. 반면 트레이시 에민은 자신의 어릴 적 상처, 특히 가장 사적인 영역이라 생각되는 성(性)과 관련한 기억과 관계 모두를 작품과 결부한다.
트레이시 에민의 대표적인 아플리케 시리즈 중 하나인 '1963년을 기억하며(Remembering 1963)'는 그녀가 성장하며 겪은 인종차별을 고백한다.
에민의 손글씨를 그대로 표현한 네온 작품과 손자수 작품들에 새겨진 문구들은 현대사회의 섹스, 차별, 소외 등의 키워드와 연결되며 관람자의 공감을 얻는다. 마치 다른 사람의 방에 놓여진 일기장을 훑어보듯이. 민망하고 불쾌한 기억에서부터, 어떻게 해도 씻겨질 것 같지 않은 상처들이 공개적으로, 그럼에도 사적이고 친밀하게 전달된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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