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 편법상속 막기 위한 법률.. 억울할 수 있지만 법원 판단 옳아"
수원교차로 황필상씨 기부 후에도 회사 경영.. 순수한 기부 소명해야
지난 해 연말 네티즌들을 뜨겁게 달궜던 사건이 있었다. 200억원대 재산을 장학재단에 기부했다가 오히려 240억원의 세금폭탄을 맞게 된 한 50대 사업가의 사연이었다.
수원교차로 황필상씨 기부 후에도 회사 경영.. 순수한 기부 소명해야
생활정보지인 '수원교차로'를 설립.운영해온 황필상씨(68)는 2002년 거의 전 재산에 가까운 수원교차로 주식 90%를 모교인 아주대학교에 기부했다. 가치로 따지자면 200억원에 달하는 큰 금액. 아주대는 이 돈으로 장학재단을 설립했고 장학재단은 아주대와 KAIST 학생들에게 30억원 상당의 장학금을 지급하고 교수연구비 20억원 등 6년 동안 60억원의 장학사업을 벌였다.
하지만 2008년 세무당국은 장학재단에 14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부과했다.
황씨와 장학재단은 곧바로 소송을 냈다. 1심은 황씨 측이 승리했지만 2심에서는 패소했고 현재 사건은 4년째 대법원에 계류 중이다. 그러는 사이 세금은 불어나 225억원에 달하게 됐다. 당초 기부금인 225억원을 훌쩍 뛰어넘는 금액이다. 급기야 세무당국이 재단의 모든 수익금을 압류하면서 장학사업도 중단됐다.
사건은 대서특필됐다. 잘못된 세금제도가 기부문화를 저해한다는 지적과 함께 "세상물정 모르는 국회의원이 만든 엉터리 법률이 '기부천사'에게 세금폭탄을 때렸다"는 비난이 봇물을 이뤘다. 이 참에 잘못된 조세제도를 고쳐야 한다는 주장도 강하게 대두됐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점차 새로운 시각이 제기되기 시작했다. 설사 황씨에게 억울한 사정이 있다 해도 증여세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과거 재벌기업이 공익재단을 편법상속의 통로로 악용, 이런 규제가 생겼다는 설명이다. 현행 '상속세 및 증여세법' 제48조1항은 공익법인이 증여받은 재산에는 증여세를 물리지 않도록 하면서 기부자와 특수관계(경영권 등)에 있는 내국기업의 의결권 있는 주식의 5% 이상을 기부받을 때는 부과토록 하고 있다.
수도권 지역에서 근무하는 현직법관 K씨(46.사법연수원31기)는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 있겠지만 증여세법이 잘못된 것은 아니다"며 "순수한 기부자를 보호할 수 있도록 법이 개정돼야 한다는 점은 인정하지만 현재로서는 항소심 판단이 틀리지 않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법무법인 동인의 박성하 변호사(49.사법연수원 30기)도 "재벌의 편법상속을 막기 위한 법률이고 여전히 존속가치가 있다"면서 "개별적으로 억울한 사람이 있을 수 있지만 법률이 잘못된 것은 아니라고 본다"고 밝혔다. 일부에서는 "기부가 목적이라면 주식을 팔아 현금으로 기부하는 방식도 있지 않느냐" "주식을 기부했지만 지금도 해당 회사를 경영하고 있지 않느냐"며 황씨를 의심하는 눈초리도 없지 않다.
그러나 법조계 인사들은 황씨가 억울한 피해자라는 점에 대체로 공감하는 분위기다. 법률의 목적이 정당하고 필요한 수준의 규제라지만 애꿎은 피해자는 구제해야 하는 것 아니냐는 것이다.
황씨 역시 대법원 판단에 마지막 희망을 걸고 있다. 1.2심 과정에서 황씨 측은 '장학사업을 위한 순수한 기부'라는 점을 강조하며 재벌기업의 편법상속을 막기 위해 만들어진 세금조항 적용은 안된다고 주장했다. 재벌과 관련 없는 내국기업으로 기부자가 경영권을 갖고 있지 않는 경우 5%를 넘더라도 증여세를 부과하지 않는다는 점을 내세우고 있다. 황씨가 주식의 90%를 기부해 더 이상 회사의 주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법조계는 황씨가 여전히 회사를 경영하고 있다는 사실을 어떻게 소명할지, 순수한 기부라는 점을 얼마나 설득력 있게 제시할지에 따라 대법원 판단이 나올 것으로 보고 있다.
장용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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