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선진화법을 둘러싸고 온 나라가 온통 시끌벅적하다.
헌법재판소에서는 선진화법에 대한 권한쟁의 심판소송의 공개변론이 열렸고, 정치권에서는 연일 치열한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특히 여당 내에선 선진화법 제정의 책임 소재를 두고 친박(친박근혜)계와 김무성 대표 등 비박계 간의 노골적인 감정대립이 아슬아슬하다. 장외에서는 경제활성화법안의 처리를 촉구하는 '민생구하기 입법촉구 천만인 서명운동'이 벌어지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과 삼성, SK그룹 등 재계까지 서명에 동참한 이 운동도 사실상 국회선진화법 반대운동이다.
국회선진화법은 전기톱, 해머, 최루탄 등으로 요약되는 '동물국회'를 막기 위해 여야가 19대 총선에서 공약으로 내걸고 만든 국회법이다. 그런데 정부·여당이 요구한 법안들이 계속 야당에 막히면서 법안 폐지 논란이 거세다. 선진화법이 민주주의 원리인 '다수결의 원리'를 위배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민생을 살리기 위한 정부·여당의 법안 통과 노력과 안타까움은 백번 이해할 만하다. 그러나 선진화법을 둘러싼 일련의 행태를 보고는 씁쓸함을 금할 수 없다. 미성숙한 정당정치와 의회정치의 민낯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기 때문이다. 특히 필자는 선진화법 논란의 정국 속에서 국회의장과 여당의 주류세력인 친박계 간에 벌어진 일들에 관심을 기울여볼까 한다. 의회정치 발전과 관련, 주목할 만한 사건이기 때문이다. 여야 간 또는 당내 계파 간 벌어지고 있는 언쟁은 정치과정에서 매일 일어나는 공방쯤으로 치부할 수 있는 일이지만, 입법부를 대표하는 국회의장과 여당의 관계는 의회정치 발전에 필요한 이슈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삼권분립은 국가권력을 입법부, 사법부, 행정부 셋으로 나누어 국가권력이 함부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한 것으로 민주주의 국가에서 널리 중시되는 원리다. 우리나라도 삼권분립을 헌법의 기본정신으로 삼고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서 국회의장은 삼권분립에 준하는 헌법상의 지위를 지니고 있음에도 그 위상과 권한은 극히 낮은 편이다. 역대 제왕적 대통령들이 국회의장의 기능과 권위를 약화시켰기 때문이다. 역대 정부에서 국회의장은 대통령의 의지를 이행할 다선 정치인 한 명을 골라 국회의장이라는 명예직을 선물로 주는 성격이 강했다. 이러다 보니 국회의장이 대통령과 행정부에 예속돼 제대로 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 그래서 2002년 이후 국회법에는 의장의 당적보유를 금지시켰다. 국회의장이 명실상부한 의회의 대표로서 초당적 국회운영을 하라는 의미였다. 그런데 헌법과 법률의 기본정신이 유명무실해지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그것도 법을 만든 국회의원들로부터 말이다.
아무리 법안처리가 시급하더라도 국회의장에게 모욕을 주면서까지 의회정치를 궁지로 몰아서는 안된다. 자당 출신 국회의장이라고 해도, 의회나 국회의장의 품격과 권위를 인정해줘야 한다. 선진화법 개정안의 직권상정을 거부하는 국회의장을 향해 '다른 당으로 출마할 거라는 보도가 있다'는 식으로 몰아붙이는 것은 지난친 언사다. 국회의장을 겁박하는 여당, 그걸 방조하는 청와대. 한국정치의 또 다른 수준을 보여주는 것 같다. 권력의 핵심세력들에는 여당의 입장에 쉽게 동조해주지 않는 국회의장에 대해 '누구 때문에' '누구의 대표로' 국회의장이 되었는지 '본전 생각'이 날 수도 있다. 그러나 다수결원리를 찾겠다고 또 다른 헌법가치인 삼권분립을 허물어뜨려서도 안된다.
seokjang@fnnews.com 조석장 정치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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