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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돈의 마법이 사라져간다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2.15 16:55

수정 2016.02.15 16:55

[fn논단] 돈의 마법이 사라져간다

글로벌 경제의 신음소리가 끊어질 기미를 보이질 않는다. 끝없이 떨어지는 국제유가에 산유국들의 재정상태는 피폐해지고 있으며, 경착륙에 대한 우려가 커져가는 중국 경제의 앞날은 위태롭게만 보인다. 또한 오래 전에 혼수상태에 빠진 유럽과 일본 경제는 도무지 회복의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장기화되고 있는 위기의 단상이다.

이러한 위기상황에 대한 가장 일반적인 대응방법은 흔히 돈풀기라고 표현되는 통화정책의 완화이다. 돈을 풀어 이자율을 낮춤으로써 소비와 투자심리를 개선시켜 경제상황을 호전시키는 것이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직후 미국, 유럽, 일본 등 전 세계 주요 국가의 중앙은행들은 돈풀기 행렬에 동참했다. 그리고 약 8년이라는 시간이 흘렀고, 이제는 중앙은행에 의한 돈풀기가 일상이 돼버렸다.

우리는 지난 8년간 엄청난 양의 돈이 금융시스템으로 유입되는 것을 지켜보았다. 그런데 돈의 힘으로 찍어 누를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던 이 위기라는 녀석은 우리 곁에서 한 발짝도 더 멀어지지 않은 듯하다. 전지전능하게만 보였던 돈의 힘이 이상하게도 위기에 대해서는 통하지 않는 것이다.

실물경제의 흐름을 원하는 방향으로 통제하기가 매우 어렵다는 사실을 인정한다면 돈의 마법이 사라져가는 이러한 현상은 별로 놀라운 일이 아니다. 금화나 은화가 화폐로 사용되던 시절과는 달리 현대에 있어서 돈이라는 것은 매우 관념적인 것이며 사람들 간의 신용에 기반해 존재한다. 그렇기에 인쇄기를 돌려 돈을 무작위로 찍어낸다고 해서 경제가 가지고 있는 구조적인 문제점들이 해결될 수는 없음이다.

1997년의 외환위기를 뼈저리게 겪은 우리는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도 잘 기억하고 있다. 외환위기의 극복은 한국은행에 의한 무제한적 돈풀기를 통해 이루어지지 않았다. 오히려 실물경제가 가지고 있었던 구조적인 문제점들에 대해 과감히 메스를 들이댐으로써 환부를 도려내었던 것이 극복과정의 핵심이었다. 물론 이렇게 뼈와 살을 깎는 구조조정을 통한 해결방식은 매우 고통스러운 과정을 수반한다. 그렇지만 위기의 해결에 있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요소임을 인정해야만 한다. 대부분의 국가들이 실물경제 조정에 대한 노력은 등한시하면서 돈풀기 정책에만 매달리고 있다는 것은 매우 안타까운 사실이다.

통화확대 정책은 보다 근본적인 위기해결 방안의 채택이나 실행을 위한 시간벌기의 목적으로 활용되는 것이 바람직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유럽이나 일본에서 실시되고 있는 비전통적인 통화정책들은 일시적인 시간벌기의 목적이라기보다는 자국이 가지고 있는 문제점들을 조금이나마 외부로 떠넘기고자 하는 목적이 더 크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러한 방식은 환율전쟁과 같은 부작용만 양산할 뿐 전혀 근본적인 치유책이 되지 못한다. 유럽과 일본의 극단적인 통화정책이 성공하기 어려운 이유이다. 돈이 가진 마법에 대한 환상에서 벗어나야 한다.

엄청난 규모의 돈뭉치들이 이 시간에도 글로벌 금융시장을 굴러다니고 있다.
그리고 몇몇 중앙은행들은 지극히 극단적인 방법까지 동원해 통화공급을 늘리고 있다. 풀린 돈들이 가진 위험성은 외면한 채 말이다.
그들이 푼 돈들이 알아볼 수 없는 폭탄이 되어 우리를 찾아올 수 있음을 이해하고, 근본적인 체질개선을 위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할 때이다.

황세운 자본시장연구원 자본시장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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