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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옥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3.20 17:17

수정 2016.03.20 17:17

중국 전국시대 초(楚)나라에 변화(卞和)란 사람이 있었다. 그는 형산에서 옥돌 원석을 얻어 여왕(勵王)에게 바쳤다. 왕은 옥공을 시켜 옥을 감정하게 했다. 옥공은 옥이 아니라 돌이라고 말했다. 화가 치민 여왕은 변화의 왼발을 잘랐다.

이어 무왕이 즉위하자 변화는 또 옥을 바쳤다. 이번에도 옥공은 돌이라고 감정했다. 무왕은 변화의 오른발을 잘랐다.

이어 문왕이 즉위했으나 두 발을 잃은 변화는 움직일 수조차 없었다. 이에 변화는 옥을 품고 형산 아래서 통곡했다. 그 소문이 문왕의 귀에 들어갔다. 문왕은 다른 옥돌 가공사를 시켜 옥돌을 쪼개라고 명했다. 그러자 그 속에서 흠결 한 점 없는 아름다운 옥이 나왔다. 문왕은 그 옥을 갈아 둥글게 만든 뒤 화씨지벽(和氏之璧)이란 이름을 붙였다. 변화의 옥돌이란 뜻이다. 그후 화씨지벽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석의 대명사가 됐다.

힘깨나 쓰는 이들은 다 화씨지벽을 손에 넣으려 했다. 여차여차하여 화씨지벽은 중국 최초의 통일제국을 이룬 진시황의 손에 들어간다. 진시황은 옥돌로 통일제국의 국새를 만들게 했다. 기록에 의하면 국새엔 '수명우천 기수영창'(受命于天 旣壽永昌)이란 글귀를 새겨넣었다고 한다. '하늘에서 명을 받았으니 그 수명이 영원히 번창하리라'는 뜻이다. 옥으로 만든 국새, 곧 옥새는 한나라 고조(유방)를 거쳐 삼국시대 조조로 전해지다 당나라 때 분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우리도 옥새를 썼다. 한자로 고려국왕지인, 조선국왕지인 같은 글자를 새겼다. 옥새 손잡이는 거북으로 했다. 황제를 상징하는 용은 중국의 전유물이었기 때문이다. 1897년 대한제국을 선포한 뒤 비로소 고종은 황제국의 위상에 맞는 새로운 옥새 제작을 명했다. 이때 처음으로 손잡이를 용 모양으로 한 국새가 만들어졌다. 해방 이후엔 국새를 다섯번 만들었다. 지금 쓰는 국새는 금 합금 소재다. 훈민정음체로 '대한민국'이라고 새겼다. 외교문서, 훈장, 고위 공무원 임명장 등에 수시로 찍힌다.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옥새 투쟁'이 화제다. 옥새는 그가 가진 당인(黨印)과 당대표 직인을 말한다. 4.13 총선에서 정당 후보로 등록하려면 두 도장이 찍힌 서류를 제출해야 한다. 만약 비박계 몰락에 화가 치민 김 대표가 도장을 안 찍으면 묘한 일이 벌어진다. 옛날엔 옥새를 놓고 대판 싸움이 벌어지기도 했다. 옥새를 쥔 자가 정통성을 확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친박.비박 간에 21세기판 옥새 쟁탈전이 벌어질지도 모르겠다.

paulk@fnnews.com 곽인찬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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