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9년 6월 4일, 소피 칼씨께. 저는 미국에 사는 스물일곱 살 남성입니다. 최근에 오랫동안 지속해왔던 한 관계를 끝내야 했습니다. 실연 이후의 감정과 느낌을 추스르면서 일상을 힘겹게 헤쳐나가고 있습니다. 저는 파리에 있는 당신의 침대에서 나의 애도를 기억하는 시간을 갖고 싶습니다."
편지를 보낸 남자는 미국에 거주하는 조시 그린이라는 작가다.
소피 칼은 우리가 겪는 매우 일상적이고 소소한 삶에 일정한 규칙을 두고 개입하며 작품을 연출한다. 그녀는 사진과 글을 통해 이러한 일이 있었노라고 증거물을 제시하지만 그 내용들 속에는 작가에 의해 연출된 사실과 그 연출을 배반하는 돌발상황이 섞여 있다. 살면서 타인이 나의 삶에, 또는 내가 타인의 삶에 개입하게 되는 것처럼, 자신 만의 공간으로 타인을 끌어들이고 이를 통해 연결된 타인의 생활과 감정까지 들여다보게 만드는 것. 소피 칼이 이루는 현실에서의 마법이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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