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그림산책] 조국을 그리워하며 찍은 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4.14 17:34

수정 2016.04.14 17:34

김환기 '무제 01-VI-70 #174'
김환기 '무제 01-VI-70 #174'(1970년)
김환기 '무제 01-VI-70 #174'(1970년)

일찍이 영국의 미술사학자에 의해 '한국의 가장 유명한 20세기 화가'라는 칭송을 받은 수화(樹話) 김환기(1913~1974).

그의 작품이 잇따라 국내 최고가를 경신하게 된 바탕에는 한국 회화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현대주의 서양 회화에서 독보적인 작업을 지속해온 수화 특유의 조형성이 깔려 있다. 가장 왕성한 활동을 보여준 작고하기 직전 뉴욕 시절 작품인 '무제 01-VI-70 #174'는 그의 1970년대 '점묘 추상'의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와 점의 패턴, 사이즈 등이 유사하다.

그의 작품 철학이 오롯이 담긴 대표작 '어디서 무엇이 되어 다시 만나랴'는 폴 고갱(1848~1903)이 절망적인 말년에 그린 '우리는 어디서 왔으며, 우리는 무엇이며,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와 매우 유사한데, 어려운 환경에서 그림을 그린 천재 예술가의 떨칠 수 없는 우수(憂愁)가 두 대가의 철학적인 작품을 낳았다고 볼 수 있겠다.

'무제 01-VI-70 #174'는 수평의 연속이 종횡을 이루는 질서 안에 그가 그토록 그리워한 조국의 하늘과 땅, 바다가 환상적으로 담겨 있다.
"친구의 편지에 이른 아침부터 뻐꾸기가 울어댄다 했다.

뻐꾸기 노래를 생각하며 종일 푸른 점을 찍었다"고 한 그의 일기의 한 대목은 작품 속 그의 내면과 맞닿아 있다.
"내가 그리는 선, 하늘 끝에 더 갔을까, 내가 찍은 점, 저 총총히 빛나는 별만큼이나 했을까. 눈을 감으면 환히 보이는 무지개보다 더 환해지는 우리 강산…." 종일 점을 찍어나가면서 조국의 자연, 가족, 친구들을 생각했다는 뉴욕 시절 김환기의 일기는 그가 찍어나가는 점, 그가 그려나가는 선이 다름 아닌 그리움이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다.

변지애 K옥션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