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천리 누비길' 통일 염원 담아
![[기발한 사명 이야기(9)] 삼천리자전거, 첫 생산품 '3000리호'서 유래](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16/05/05/201605051632423334_m.jpg)
자전거로 삼천리 금수강산을 누비고 싶다는 소망을 간직한 회사가 있다. 바로 삼천리자전거다. 삼천리자전거는 70년이 넘는 역사를 지닌 대한민국 최초의 자전거 회사다. 김철호 사장이 지난 1944년 설립한 '경성정공'에서 시작됐다.
광복 직전인 1944년 당시 서울의 교통권 반경은 10km 정도에 불과했으며 자전거는 300여대 수준이었다.
하지만 해방 직후 팽창하는 인구와 부족한 교통수단으로 큰 혼잡을 빚게 된다. 당시 대부분의 자전거는 일제가 들여왔던 중고품이었던 탓에 부품이 심각하게 부족했고 경성정공에도 자전거 부품 주문이 쇄도했다. 각종 부품의 분해 재생에서 시작된 생산 업무는 점차 차체, 림, 스포크, 브레이크 등 주요부품의 생산으로 확대되며 자전거 부품의 완전 국산화와 완성 자전거의 생산의 기틀을 마련해나가게 된다.
지난 1952년 경성정공은 '기아산업'으로 사명을 변경하고 대한민국 최초의 국산 자전거를 선보인다. 당시 기아산업은 회의에서 신제품 자전거의 이름을 놓고 토론을 거듭했다. 그 결과 시대적 배경을 반영해 통일의 염원을 내포한 '삼천리'가 좋겠다는 의견이 채택돼 최초의 국산 자전거에는 '3000리호'라는 이름이 붙게 된다.
국산 자전거가 생산된 것은 당시 큰 뉴스였다. 시작품 12대로 시작된 3000리호는 대한민국 기계 산업의 부흥에 이바지하고 국민들의 대중교통 수단이자 소화물 운송수단으로 오랫동안 사랑 받게 된다. 기아산업은 3000리호를 통해 1965년 국내 최초 자전거 해외 수출, 1968년 국내 최초 자전거 부문 KS 마크 획득의 쾌거를 이룬다.
1979년 마침내 기아산업에서 자전거 부문이 분사돼 '삼천리자전거'가 설립된다. 삼천리자전거는 당시 많은 사람들의 인식 속에 대한민국 자전거의 시작이자 상징으로 자리잡았던 3000리호의 이름을 본 땄다. 삼천리자전거의 사명에는 3000리호의 이름에 담긴 정신을 계승, 삼천리 금수강산을 자전거로 누비고 싶다는 소망과 삼천리를 달려도 고장 나지 않는 자전거를 만들겠다는 다짐이 내포돼 있다.
이후 삼천리자전거는 경제개발계획, 수출시장개척 등 사회, 경제적인 변화 대열에 동참하면서 대약진의 발판을 마련해왔다. 지속적인 제품 개발을 통해 자전거 트렌드를 선도하며 현재까지 자전거 시장 점유율 부동의 1위를 지키고 있다.
true@fnnews.com 김아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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