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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 권영우 '무제' ..허무에 도전하는 인간의 결연함

[그림산책] 권영우 '무제' ..허무에 도전하는 인간의 결연함

동양화의 현대적 표현에 있어 다채로운 가능성을 보여준 '종이의 화가' 권영우 (1926~2013). 그는 1960년대 중반부터 한지 매체를 고집하며 이를 뚫고 찢는 행위를 통해 종이가 그 자체로서 독자적 회화 세계임을 입증해왔다.

2015년 베니스 비엔날레 '단색화전'에서 국제적 주목을 받은 그의 작품은 1975년 일본 도쿄화랑의 첫 단색화 전시 '한국 5인의 작가, 다섯 가지의 흰색'을 통해 세계시장에 그 첫발을 내디뎠다. 그가 전통적 매체인 한지를 실험적 방식으로 구현한 추상적인 표현의 작품들은 1970년대 후반 그가 나이 50을 넘어 파리행을 택한 이후 청회색의 먹이나 과슈가 백색 화선지에 자연스럽게 배어 나오는 은은한 효과로 완성되게 된다.

찢기고 갈라진 종이의 틈이 주는 긴장감은 과감한 채색 기법과 대비되며 작품에 깊이를 더하는데, 미술평론가 이일은 '종이와의 만남, 그 내밀의 긴장'에서 이런 시도를 통해 작가가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여유롭고 원숙하게 드러내며 다양한 감각과 시각적 즐거움을 제공한다고 했다.

한편 미술평론가 정병관은 회화성 그 자체보다 칼로 선을 긋는 동작과 이로부터 생기는 공간의 문제를 언급했다.
모든 인간은 현실 속에서 때로는 뜻을 이루고 때로는 실패하며 결국 죽음에 이르기에, 그의 작품 역시 허무 앞에 도전하는 인간의 결연한 동작을 상징한다고 말이다. 그는 나아가 이렇게 생성된 긴장감이 바로 권영우 그림의 바탕이라 했는데, 이를 방증하듯 카뮈나 사르트르의 실존철학에 심취하며 청년 시절을 보낸 작가 권영우는 '절대적인' 그 무엇을 추구하는 외골수처럼 작업을 해왔다. 반복적인 예술행위를 자신과의 끈질긴 싸움으로 생각한 작가는 절충 없는 순수 추상화가의 한 사람으로 평생 꿋꿋이 동양화의 뿌리를 지키면서 동시에 그 새로운 지평을 연 것이다.

변지애 K옥션 스페셜리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