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건·사고

취준생 두번 울리는 기업 '깜깜이' 채용 건강검진 시스템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5.30 16:41

수정 2016.05.30 18:44

#.김모씨(27)는 이달 한 중견기업 채용에서 석연치 않은 이유로 탈락했다. 두 달간 서류과정부터 2차 면접을 통과하고 진행된 건강검진에서다. 입사 전 2차례 받은 검진에서 이상이 없었고 채용 공고에서 건강이상자를 채용하지 않는다는 내용을 본적이 없어 그는 입사를 기대했다. 그러나 '최종 불합격' 판정을 받았다. 건강검진 이후 회사는 김씨에게 "면접점수를 재평가해보니 합격선에 미달됐다"고 탈락 이유를 전했다.

김씨는 "최종 면접까지 합격했는데 건강검진 이후 떨어진 것은 건강 문제 때문이라는 생각이 든다"며 검진 결과가 궁금했지만 사측은 결과를 알려주지 않았다"고 털어놨다.

기업이 채용 건강검진 과정에서 구직자의 '건강 이상'을 이유로 부당하게 탈락시키고 있다는 주장이 이어지고 있다. 건강 이상자를 채용하면 향후 산업재해보상 문제가 불거질 수 있다는 게 이유다. 그러나 채용시 특정 병력(病歷)을 결격사유로 제시하지 않고는 건강검진 이후 구직자 병력을 내세워 탈락시키는 것은 병력차별이라는 지적이다.

■건강검진 이상에 '역량 미달' 둔갑
대부분 기업은 채용과정에서 건강검진을 실시한다. 통상 간기능, 혈당, 콜레스테롤 검사 등이 이뤄지고 일부는 요추, 매독, 심지어 임신 여부도 조사한다. 채용 탈락의 대표적인 사유는 B형 간염, 고혈압, 당뇨, 근골격계 질환이다.

30일 국가인권위원회의 '인권통계'에 따르면 2004년 접수된 병력차별은 7건에서 2014년 83건으로 매년 급증하고 있다. 취업준비생이 기업과 마찰을 피하기 위해 문제를 제기하지 않는 경우까지 포함하면 실제는 훨씬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문제는 건강 이상을 이유로 채용을 거부하는 것은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따라 병력차별에 해당할 수 있다는 점이다.

이같은 현상은 기업이 근로자와 산업재해보상 다툼을 예방하기 위한 목적이라는 게 노동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봉성옥 상생 노무사는 "기업이 병력을 문제삼는 것은 향후 노동자가 산재 판정을 받을 가능성이 높아 이를 피하기 위한 사전 검열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또 "결격사유로 특정 병력을 제시하지 않았다가 건강검진 이후 병력을 이유로 탈락 시키는 것은 법적 문제가 있어 보인다"고 덧붙였다.

더구나 병력이 있는 구직자가 해당 직무 활동이 가능한지 여부를 의사가 아닌 인사담당자 등이 판단하는 것은 더 큰 문제로 지적된다. 한 제약회사 인사팀에서 근무했던 김모씨(32)는 "간염, 당뇨병, 고혈압 등 내부적으로 입사가 불가능한 병이 있었다"며 "고혈압은 인사팀장이 건강검진에서 나온 수치를 보고 직접 판단, 채용에서 탈락시켰다"고 밝혔다. 그는 "이 경우 구직자의 역량 미달이라는 이유를 댔다"고 전했다.

입사 지원자들은 자신의 검진 결과를 확인할 수 없다는 점 역시 문제라고 주장한다. 기업이 병원과 계약을 통해 검진 결과를 교류하기 때문에 구직자는 검진 결과를 통보받지 못하는 구조다. 결국 건강검진이 탈락의 원인으로 의심돼도 확인할 방법이 없는 셈이다.

■병력 이유 합격 취소는 '차별'
인권위는 특정 병력을 이유로 채용을 탈락시키는 것은 병력차별로 판정한 바 있다. 지난해 10월 김모씨는 한 기업에 지원해 합격통보를 받았으나 건강검진으로 B형 간염바이러스 보균자라는 사실이 확인되자 합격이 취소됐다. 김씨는 인권위에 제소했고 인권위는 "B형간염 바이러스 보유자라는 이유만으로 채용여부가 번복되는 것은 부당하다"며 "동일 또는 유사한 차별행위가 재발되지 않도록 하라"고 주문했다.

최근에는 대기업을 중심으로 건강검진 결과를 면접 결과와 통합해 발표하는 꼼수도 나타나고 있다. 탈락 사유를 '면접 역량 미달'로 둔갑시킨다는 것이다.
인권위 관계자는 "병력을 이유로 채용에서 탈락시키면 문제 소지가 있지만 사유가 역량 미달이면 조사가 거의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취업의 마지막 문턱에서 취업준비생은 불안을 호소한다.
고혈압이 가족 내력인 박모씨(27)는 "고혈압 때문에 탈락할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혈압을 낮추는 약을 먹고 있다"며 "입사 문턱에서 건강 문제로 탈락시키는 행위는 취준생을 두번 울리는 일"이라고 호소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