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업규제·시장장벽 비판.. 美 무역적자 불만 쏟아내
"한국엔 국제적 규범을 따르지 않는 기업규제가 너무 많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1일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제대로 이행되지 않고 있다"며 공식적인 통상압력으로 해석될 정도로 강도 높게 우리 정부를 향해 불만을 토로했다. 그의 발언의 상당부분은 '한국 정부의 규제'에 국한됐지만 이면엔 미국 산업계와 워싱턴 정가의 한.미 FTA 재협상 요구 및 한.미 간 무역불균형을 둘러싼 불만이 고스란히 투영된 것으로 해석된다.
더욱이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 공화당 대선후보를 비롯해 미 정가의 유력인사들이 잇따라 한국 때리기에 가세한 상황에 나온 것이라 묵과하기 어려워 보인다. 미국의 무역적자가 확대될수록 한국에 대한 통상압력이 본격화되는 게 아니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크다.
리퍼트 대사는 이날 서울 소공로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열린 세계경제연구원 초청 강연에서 한국 정부가 비관세장벽 중 하나인 규제를 통해 미국 자동차산업, 법률서비스업계 등의 시장진입을 가로막고 있다는 점을 언급하며, 우리 정부가 공개적으로 가입 희망 의사를 밝힌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을 가리켜 "자동가입은 될 수 없을 것"이라고 잘라 말했다. 전반적으로 공개석상에서 외교적 언어를 구사해온 리퍼트 대사가 이 같은 수준의 발언을 내놓은 건 드문 일이다.
이 자리엔 송인창 기획재정부 국제경제관리관(차관보), 외교부 천준호 양자외교교섭국장, 유명희 산업통상자원부 FTA교섭관이 참석했다.
리퍼트 대사는 한국을 한마디로 '기업 하기 어려운 나라'라고 지칭했다. 그는 "(한국은) 규제로 직접 영향을 받는 당사자(미국 정부 및 산업계)와 충분한 협의를 하지 않고, 규제에 대한 명확한 해석도 없어 미국 기업들이 한국 진출을 꺼리게 된다"고 주장했다. 심지어 "한국은 담당자가 달라지면 규제 해석도 달라지고, 담당자가 같다고 해도 해석의 차이가 크고 다양해 시장왜곡과 불확실성이 크다"고도 했다.
리퍼트 대사는 "전 세계적으로 한국에만 존재하는 기업규제가 많다는 인식이 퍼져 있다"며 "예를 들어 자동차 좌석 크기를 수치로 정해 규제하는 나라는 한국뿐"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미국 기업들이 한국의 '특이한 규제환경'으로 인해 글로벌 판매용과 한국 판매용으로 나눠 생산하고 있는 것을 가리켜 '이중 언어'를 쓰고 있다고 표현했다. 리퍼트 대사는 또 서비스산업과 관련해선 법률서비스 개방을 주장했다.
한국에 이 같은 지적을 했지만 정작 미국의 자국산업 보호주의 경향은 한층 강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영국 BBC는 미국의 보호주의 경향이 짙어졌다고 분석하며 올 연말 미국 대선이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실제 최근 미 상무부는 한국산 철강제품에 50% 가까운 고율의 덤핑마진을 부과하면서 해당 업체(현대제철)가 제공한 자료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았다는 주장이 제기된 상황이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김유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