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데스크 칼럼]징벌적 손해배상 vs. 징벌적 행정처분

정훈식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6.05 17:11

수정 2016.06.05 22:04

[데스크 칼럼]징벌적 손해배상 vs. 징벌적 행정처분

독일의 국민차 폭스바겐의 연비조작 사건에 이어 가습기 살균제 사태의 책임규명이 속도를 내면서 우리나라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도입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 소비자단체가 최근 20대 국회의원을 대상으로 벌인 설문조사에서 대부분이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에 찬성 입장을 밝혔다. 이에 따라 우리나라도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이 시간문제일 뿐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다.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는 악의적이거나 의도적인 불법행위로 손해를 입힌 자에게 민법에서 정한 실제 손해배상 기준을 훨씬 넘는 금액을 피해자에게 배상토록 하자는 것이다. 민사상 가중처벌의 개념이다. '응징'을 통해 가해자를 단죄하고 동시에 유사행위의 재발을 막는다는 게 그 취지다.
미국을 비롯해 영국을 비롯한 일부 유럽국가와 호주, 캐나다 등에서 이 제도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두 가지 이유로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도입에 신중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우선 헌법에서 정한 일사부재리의 원칙(이중처벌)과 민법의 과잉금지(실손해배상) 원칙에 위배된다는 것이다. 또 과도한 손해배상으로 기업의 투자의욕과 기업 활동을 위축시켜 결과적으로 국가 경제에 짐을 지울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이들의 주장처럼 우리나라에서는 굳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를 법제화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이미 그보다 훨씬 센 '징벌적 행정처분'이 있기 때문이다.

최근 일부 기업에 대한 당국의 처분은 가히 징벌적 손해배상 수준을 초월한다. 롯데면세점 월드타워점 및 SK네트웍스의 워커힐면세점 재승인 탈락(폐쇄)과 롯데홈쇼핑에 대한 영업정지가 그 사례가 아닐까 한다. 지난해 면세점 특허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해 오는 26일 간판을 떼는 롯데면세점 월드점타워점은 건너편의 잠실롯데백화점 내 면세점을 새로 지은 월드타워점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뒷말이 무성했고 이것이 발단이 됐다는 후문이다. 관세청이 기존 고시에 따라 면세점의 장소변경을 허용하자 경젱업체들의 반발이 이어졌고 이것이 재승인 심사에서 탈락의 한 원인이 됐다는 것이다.

미래부의 롯데홈쇼핑에 대한 '프라임타임 6개월 영업정지' 처분도 석연찮다. 지난해 실시한 재승인 심사에서 일부 임원의 납품비리 사실을 보고하지 않은 게 문제가 됐다. 미래부는 지난해 이를 문제 삼아 향후의 심사기간 1년 단축 등 처분을 내렸다. 하지만 그 후 감사원에서 '부실 승인'을 지적하며 미래부 담당공무원에 대한 징계를 내리자 이번에는 영업정지라는 초강수 처분을 들고 나왔다.

일각에선 이 두 사례는 징벌적 손해배상제도 이상의 가혹한 처분이라고 지적한다. 국민이나 기업 등에 끼친 직접적인 피해가 없는 데다 '악의적'이라거나 '의도적'이라는 점을 딱히 입증하기 쉽지 않아 보인다. 그런데도 징벌 차원을 넘어 사형선고를 내린 거나 다름없다. 더구나 처분으로 인해 협력업체와 해당 근로자에게 큰 피해로 이어질 수 있는 상황이다. 징벌적 손해배상도 사회정서, 피해 정도, 악의 및 의도 여부 등을 감안해 손해배상액을 매기지만 가해자의 재정 상황까지 감안한다. 기업이야 죽든 말든 무데뽀 식으로 응징하지는 않는다는 얘기다.
죄는 미워하되 사람은 미워하지 말라는 말이 있다. 상법에서 기업도 인격체(법인)다.
그런 만큼 기업이 행한 범죄행위에 대해서는 과징금 등으로 엄히 다스리되 기업의 정상적인 영업활동을 가로막아서는 안된다.

poongnue@fnnews.com 정훈식 생활경제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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