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드라마 ‘응답하라 1988’에서 독서실은 단순한 공부 공간을 뛰어넘어 학창 시절 추억이 쌓이는 장소로 묘사된다. 실제 독서실에서 공부하다 보면 친구와 함께 잠시 밖에 나가 군것질도 하고 몇 번 마주친 이성에게 괜히 마음이 설레기도 한다. 공부하겠다며 계획표를 만들고선 책을 베고 자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원하는 대학에 입학했다면서 자리를 정리하고 인사하러 오는 학생도 있다.
이런 추억의 공간 독서실이 하나, 둘 사라지고 있다.
25일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시내 학생용 독서실은 2011년 1049개에서 885개로, 15% 이상 줄었다.
■학생 감소로 치명타.. 야자·학원 등도 걸림돌
학생용 독서실이 줄고 있는 데는 저출산으로 인해 중·고등학생 수가 감소한 게 가장 큰 원인이다. 서울시교육청에 따르면 중고등학교 학생은 2011년 68만3851명이었으나 2015년에는 57만1772명에 그쳤다. 불과 5년 사이에 중고등학생이 10만명 이상 급감, 잠재적 수요가 줄어든 것이다.
다른 원인으로는 고등학교 야간자율학습이 꼽히고 있다. 각 학교가 밤 10시 넘어서까지 야간자율학습을 시행하면서 학생들이 독서실에 올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일부 학원은 학원 내 자습실을 두고 있고 새 아파트에서는 주민편의시설로 학생들이 공부할 공간을 제공해 사설 독서실 입지는 갈수록 좁아지고 있다.
수년째 독서실을 운영하는 이모씨는 “예전에 독서실을 100석으로 운영하다가 지금은 60여석으로 줄였는데도 손님이 적어 독서실 좌석 등록률이 60% 수준”이라고 했다. 또 다른 독서실장 박모씨는 “대개 6월부터 수능이 있는 11월까지 좌석이 꽉 차서 대기예약을 받을 정도였는데 지금은 자리가 남아돈다"며 "손님이 적은 겨울에는 어떻게 먹고 사나 걱정”이라고 털어놨다.
한국학원총연합회 독서교육협의회 이영환 감사는 “독서실 이용자가 줄다 보니 이용료를 수년째 올리지 못하고 있다. 일부 독서실에서는 한 달 이용료를 10만원까지 내리는 등 제 살 깎아먹기식 경쟁하는 실정”이라며 “과거 독서실이 잘 될 때는 외부 봉사활동도 많이 했지만 지금은 생업이 어려우니 일에만 매달리는데도 독서실 총무에게 최저임금도 맞춰주기 힘든 실정”이라고 전했다.
■성행하는 프리미엄 독서실 "투자 주의"
사설 독서실이 침체 현상을 보이자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프리미엄 독서실이다. 카페 같은 분위기를 조성한 프리미엄 독서실은 사교육 특구로 불리는 서울 대치동과 목동 일대에 등장해 성행 중이다. 가격은 월 20만원대로, 기존 독서실보다 10만원 가량 비싸다.
프리미엄 독서실은 카페와 휴게실, 스터디그룹이나 과외 등을 진행할 수 있는 공간을 하나로 합치고 인테리어를 고급 카페처럼 꾸민 형태다. 내부를 두 곳으로 나눠 한 곳은 독서실로 교육청 인가를 받고 커피숍 및 휴게공간은 휴게음식점으로 구청에 등록했다. 독서실 내 교습 행위는 학원법 위반이지만 휴게공간으로 등록한 세미나실 등에서 하는 형태로 법망을 피한다.
이재창 독서실협회장은 “최근 프랜차이즈 형태의 프리미엄 독서실이 늘고 있지만 실제 수익은 기대 이하일 것"이라며 "프리미엄 독서실은 초기비용이 많이 들어 5~6년은 버텨야 투자금이 회수되는 만큼 퇴직 후 창업에 뛰어드는 사람들이 돈을 날리기 쉽다”고 지적했다. 그는 “반짝효과가 있을 수 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이득이 되지 않을 것"이라며 "기본적으로 학생 수가 줄어 프리미엄 형태 역시 한계가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학교 야간자율학습과 학원 자습실이 사라지면 상황이 좀 나아지겠지만 전체적인 전망은 여전히 좋지 않다”며 “나도 뾰족한 대안이 보이지 않아 독서실을 접고 다른 사업에 몰두할 예정인데 이미 독서실을 폐업하고 연락이 끊긴 사람도 적지 않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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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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