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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배임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02 17:27

수정 2016.08.02 17:27

귀에 걸면 귀걸이, 코에 걸면 코걸이. 기준이 흐릿하고 적용 대상이 지나치게 넓어 오래전부터 논란이 된 배임죄를 비아냥거리는 말이다. 1532년 독일의 카로리나 형법전 제170조에서 유래한 배임죄는 1871년 독일제국형법 제266조로 이어졌다. 이후 나치가 사회기강 확립을 위해 정치적 목적으로 도입한 것을 군국주의 일본에 이어 우리가 무비판적으로 들여왔다고 학계에서는 보고 있다.

기업 경영자가 회사에 손해를 끼친 경우 영국, 미국 등 영미법에서 형사법 적용은 폐지하고, 주주들에게 끼친 손해액에 한해서만 민사법을 적용한 지 오래다. 일본과 독일 형법에는 업무상 배임죄라는 조항이 있긴 하지만 일본은 성립요건을 '고의성이 있는 경우'로 한정했다.

독일도 마찬가지다. 기업 경영자 사건의 경우 회사에 끼친 손해를 금전적으로 배상토록 하되, 인신구속은 하지 않는다는 얘기다.

배임죄는 법적 모호성으로 인해 허점이 많다. 그래서 무죄판결이 늘어나는 추세다. 2010년부터 지난해 8월까지 검찰에 접수된 배임죄 사건은 1만5796건, 2만4609명이지만 이 가운데 절반 정도가 무혐의 처분을 받았다는 법무부 자료도 있다. 대법원에 따르면 2013년 횡령.배임죄의 1심 무죄율은 5.4%인데 여기에 공소기각, 선고유예를 포함하면 10%까지 높아진다. 반면 일반형법과 전체 범죄의 1심 무죄율은 각각 2.6%, 1.7%에 그쳤다.

재계는 해법으로 배임죄를 판시할 때 경영판단의 원칙을 반드시 적용하도록 법에 명문화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경영진이 성실하고 공정하게 경영상 판단을 통해 기업활동을 했다면 손해를 끼쳤더라도 책임을 면해주자는 법리다. 미국에서 경쟁력 있는 새로운 기업들이 잘 나오는 것에는 다 이유가 있다. 대법원도 2004년 이 원칙을 적용해야 한다고 판시했지만 일선 법원에서는 제대로 적용되지 않고 있다.

급변하는 대내외 환경 속에서 기업활동은 필연적으로 불확실할 수밖에 없다. 위험한 장사가 많이 남듯이 수익성과 안정성은 반비례한다. 하지만 위험을 감수한 기업의 결정은 사적 영역에서 이루어지는 정당한 경영활동이지 범죄가 될 수 없다.
물론 그 과정에서 투자자 간 이해 불일치로 인한 다툼은 있을 수 있겠지만, 이는 민사적 손해배상의 문제로 다루면 될 일이다. 실패는 기업 현장에서 얼마든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며 장기적으로 기업의 미래에 있어 자양분이 될 수 있다.
실패와 부패는 구분해야 한다.

mskang@fnnews.com 강문순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