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위키드 무대가 끝나도 글린다로 기억될 그녀, 정선아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8.15 17:23

수정 2016.08.15 17:23

뮤지컬 '위키드'로 스타덤 오른 배우
동쪽마녀 '글린다' 역할로 국내 최다공연.. 오리지널 제작진도 "원작 뛰어넘는 글린다" 극찬
'신데렐라'인줄 알지만 15년차 배우
이젠 뮤지컬 밖 다른세계도 보여..관객에게 행복 주는 배우 될게요
어떤 공연이 재미있었는지는 그 공연이 끝난 뒤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가장 먼저 안다. 보통 2시간 가량의 짧지 않은 시간. '버텨낸' 발걸음은 무겁기만하다. 반대로 재미있는 공연을 보고 나면 피곤한 줄도 모르고 가벼운 발걸음이다. 브로드웨이 뮤지컬 '위키드'가 그렇다. 심지어 볼 때마다 그렇다.

꿈과 환상의 세계로 안내하는 화려한 무대와 의상에 우선 반하고, 사악한 서쪽마녀로 알려진 엘파바와 착한 동쪽마녀 글린다의 숨겨진 비밀과 익숙한 편견을 깨뜨리는 의미심장한 진실, 여자들의 진한 우정과 희생이 촘촘히 엮인 드라마와 메시지에 놀란다. '8세에서 80세까지(8 to 80)'라는 별명이 붙은 것은 전 연령대에 해당된다는 얘기다.

위키드 무대가 끝나도 글린다로 기억될 그녀, 정선아

■위키드, 여배우의 로망

이 모든 것을 이끄는 두 마녀, 엘파바와 글린다에게 푹 빠지는 건 피할 길이 없다. 뮤지컬로는 이례적으로 2012년 오리지널 초연을 포함해 단 3번의 프로덕션에서 실관람객수 60만명 돌파를 달성한 원동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내로라하는 여배우들이 일제히 오디션을 본다'는 작품이 '위키드'고, '여배우라면 한 번쯤 꿈꾸지만 아무나 소화할 수 없는 역할'이 엘파바와 글린다다. 입체적 인물이라 연기하기 어려울 뿐더러 뮤지컬 넘버(수록곡)의 난이도도 최상급이다.

2013년 라이선스 초연부터 올해 재연까지 두 배역을 거친 배우는 엘파바 역에 옥주현.김선영.박혜나.차지연, 글린다 역에 정선아.김소현.김보경.아이비 총 8명으로 초연과 재연 모두 참여한 배우는 박혜나와 정선아 단 2명이다. 특히 정선아(사진)는 지난 7월 30일을 기점으로 173회 공연을 돌파하며 글린다로서 국내 최다 공연 기록을 세웠다. 오리지널 제작진으로부터 '원작을 뛰어넘는 글린다'라는 극찬을 받은 것은 덤이다.

■"정선아, 오리지널 뛰어넘는 글린다"

지난 8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정선아는 "하루하루 지나가는 것이 아깝다"며 울상을 했다. "매회 정말 재미있게 했거든요. 이제 8월 말이면 끝나는데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어요. 지금 공연을 하고 있는 순간에도 그 지나감이 너무 슬퍼요."

얼마나 '위키드'의 글린다를 사랑하는지 짐작케 했다. 그런데 처음 오디션을 볼 땐 엘파바만 생각했다니 의외다. "전에 워낙 센 역할을 많이 했거든요. '중력을 벗어나(Defying Gravity)'와 같은 주요 넘버가 엘파바 몫이어서 욕심이 나기도 했고요. 그런데 사실 일상의 정선아는 딱 글린다예요. 호호."

발랄함의 극을 달리는 글린다만큼이나 정선아 또한 밝고 에너지 넘치는 배우로 유명하다. 그러니 역할 제대로 만났다. "일곱살 때 건축업을 하시던 아버지를 따라 사우디아라비아에서 5년 넘게 살았어요. 외국인 학교에서 다양한 문화의 친구들과 허물없이 지냈던 것이 활발한 성격을 만든 것 같아요."

한국에 돌아와서 중학교 때 처음 본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가 그의 꿈을 정해줬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고 춤추기 좋아하던 소녀를 단번에 사로잡은 뮤지컬 무대였다. 성악을 전공한 어머니도 딸의 열정에 물심양면으로 지원했다. "요새는 워낙 뮤지컬 교육 프로그램이 잘 돼 있고 많기도 하지만 그때만해도 불모지였거든요. 너무 어리다고 안 받아주는 곳도 많았죠. 생각해보면 제 평생 가장 뜨거운 열정의 시기였던 것 같아요."

■15년차의 꿈, 관객에게 행복을

30대 초반인데 벌써 뮤지컬 배우 15년차다. 18세에 뮤지컬 '렌트'로 데뷔한 그는 지금까지 쭉 주연급으로 무대에 서왔다. 그는 "갑자기 뜬 '신데렐라'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어릴 때 일찌감치 목표를 정해 성실히 준비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자신있게 말했다. 이제는 "나 혼자 빛나는 것보다 동료들과 함께 가는 길의 소중함을 알 만큼" 성장하기도 했다. "데뷔 초에는 욕심도 많았고 목표만 바라보며 열정만 가지고 살아왔다면 지금은 오랜 시간 함께 해온 동료들이 얼마나 소중한지 주변을 둘러보게 됐어요. 무대가 점점 더 무섭고 동시에 소중해지더라고요. '위키드' 속 글린다의 성장과정과 꼭 닮았어요."

"뮤지컬만 하고 싶다"던 본의 아닌 허세도 버렸다. "진심으로 뮤지컬만으로도 벅찼거든요. 다른 데 한눈 팔다가 작품을 망쳐서 관객을 실망시키면 어쩌나 하는 두려움도 있었고요."

하지만 지난해 예능 프로그램 '라디오스타' 출연을 계기로 자신감을 얻었다.
당시 정선아는 뛰어난 가창력과 거침없는 입담으로 화제를 모았다. "제 역량 내에서 할 수 있는 것들을 넓혀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방송을 통해 뮤지컬 관객이 늘어나는 효과도 분명히 있고요."

배우로서 궁극적인 목표는 "관객에게 행복을 주는 배우로 오랫동안 무대에 서는 것"이다.
"제 행복을 넘어 관객들의 행복이 되고 싶어요. 당장은 글린다 하면 정선아가 떠오르게 만드는 거요." 두번째 바람은 이미 달성된 것 같다.

dalee@fnnews.com 이다해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