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따른 테러로 반(反)이슬람 정서가 강해진 프랑스 남부지역에서 부르키니를 금지하는 곳이 늘어나면서 논란이 유럽 전역으로 확산되고 있다. 니스.칸 등 30여곳 지방자치단체가 공공질서 위협, 수상 안전, 위생 등을 이유로 부르키니 단속에 나섰다. 여기에 지난 23일 영국 일간지 데일리메일에 실린 한 장의 사진이 프랑스를 흔들었다. 니스 해변에서 한 무슬림 여성이 경찰 4명에 둘러싸여 부르키니를 벗도록 강요당하는 장면이었다. 프랑스 최고 행정법원은 26일 빌뇌브루베시(市)의 부르키니 규제는 위법이라고 판결했다.
자유.평등.관용의 나라, 이민자의 나라 프랑스가 부르카나 부르키니 같은 이슬람 문화를 규제하는 데 앞장선 것은 아이러니다. 프랑스는 2004년 공립학교에서 부르카와 히잡 등의 착용을 금지했고 2011년에는 유럽국가 중 처음으로 공공장소에서 얼굴을 가리는 복장을 금지하는 '부르카 금지법'을 시행했다. 부르카금지법은 벨기에, 네덜란드, 불가리아가 뒤따랐고 독일 등도 도입을 추진 중이다. 이 같은 입법 바탕엔 프랑스의 정교분리 원칙인 '라이시테(laicite)'가 깔려 있다. 시민들의 종교적 자유를 보장하기 위해 공공장소에서 자신의 종교를 드러내는 걸 자제해야 한다는 취지다.
부르키니 규제를 반대하는 쪽에서는 종교의 자유를 침해하고 무슬림 여성들을 소외시킬 수 있다고 주장한다. 부르키니 규제는 최근 잇따르고 있는 이슬람 극단주의자들의 테러에 대한 공포와 이슬람 혐오 정서가 결합돼 불거진 측면이 있다. 프랑스의 경우 인구의 10%가량이 무슬림이다. 이민자가 기존 공동체에 잘 융화되지 않아 통제 범위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두려움이 있는 듯하다.
부르키니 논쟁은 여러 인종과 종교, 문화가 뒤섞여 살고 있는 21세기 다문화 사회가 직면한 문제들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유럽 전체가 이민자 문제로 골머리를 앓고 있는지라 논쟁은 쉽게 사그라들 것 같지 않다.
ljhoon@fnnews.com 이재훈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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