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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논단] 기억과 망각 사이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05 17:07

수정 2016.09.05 17:07

[fn논단] 기억과 망각 사이

해방 후 한국문학에서 식민지 기억을 형상화한 작가들은 그렇게 많지가 않다. 아마도 나라 만들기나 전쟁의 참상, 혹은 산업화 현실 등의 문제들이 더 시급했기 때문이었을 터인데 그래도 우리 역사를 그토록 가혹하게 지배했던 당시 일본인들의 만행에 대해 고발한 작품들이 많지 않다는 것은 잘 이해가 가지 않는다. 해방 직후에 이태준의 '해방전후'나 채만식의 '민족의 죄인' '낙조' 같은 작품들이 있었지만 그 내용을 말하자면 극히 자기변명이나 자기방어로 일관하고 있다. 그러므로 김성한이나 최인훈, 하근찬 같은 작가들은 좀 특별한 의미가 있다. 특히 하근찬의 경우는 국가 주도의 공식 기억에 저항하여 이름 없는 평민들의 참상을 그려내는 데 주력한 대표적인 작가다. 그의 소설에는 대표작 '수난이대'나 '나룻배이야기' '흰종이 수염' 등에서 보듯 다리나 팔이 절단되었을 뿐만 아니라 포탄에 얼굴이 심하게 뭉개져 도깨비가 되어버린 6·25전쟁의 참혹한 모습들이 곳곳에 그려져 있다.
그렇지만 하근찬은 1960년대 중반부터 서서히 일제의 만행을 고발하는 이야기들로 관심 영역을 넓혀 가게 된다. 일본인에 대한 공포가 사실은 너무 과장된 것이었다는 것을 희극적으로 고발하는 '족제비' '일본도'에서부터 전주사범학교 시절 일본의 파시즘적 교육에 대한 고발작품들에 이르기까지 식민지시대의 잔재들에 대해 날카롭게 비판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 것이다.

그렇게 하근찬 소설을 읽다 보면 문득 눈에 띄는 장면이 있다. 어떤 작가들에게서도 잘 볼 수 없었던 위안부 관련 이야기들이 장편 '야호'(1972)나 '산에 들에'(1984)에 상당한 비중을 가지고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그는 '산에 들에'에서 '여자정신대근무령'이라는 것이 공포돼 12세 이상 40세 미만의 배우자 없는 여성들을 '징용'해서 일본, 만주, 지나, 남양 등 각지로 끌고간다고 적었다. 그리고 그들이 하는 일이란 '일본 군인들의' '갈보 노릇'이라고 분명히 밝혔다. 그로부터 거의 40년 동안, 아니 해방 후 지금까지 우리들의 공식 기억으로부터 희미해졌던 '정신대' 문제가 비로소 집단기억으로 소생하게 되었다. 지난 '8월 29일, 경술국치일'을 기해 남산 옛 '통감관저' 터에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기 위한 '기억의 터'가 만들어진 것이다.

기념물이란 그것을 누가 어디에 세우느냐에 따라 그 성격이 판이하게 달라진다. 지금까지는 주로 국가가 주도해 대형 조형물을 전국 곳곳에 세워두고 의전을 거행해 왔다. 말하자면 국가는 그 기념물을 통해 자신이 말하고자 하는 바를 새기고 버리고자 하는 바를 망각시킨다.
그렇기 때문에 역사는 기억과 망각 사이의 투쟁이라고 말하는 사람들도 있다. '기억의 터'가 민간인들의 기금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것은 국가는 망각하고자 하지만 할머니들이 기억하고자 했기 때문에 나타난 현상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의미에서 '소녀상'이나 '기억의 터'는 단순한 조형물이 아니라 망각의 기억화라는 민주주의적 의미와도 불가분의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김진기 건국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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