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카메라 렌즈를 사이에 두고 작가와 군복 차림의 피사체 간 짧고 묵직한 대화가 이어졌다.
"당신은 대한민국의 군인입니다. 본인이 생각하는 군인의 모습을 보여주세요."
전역을 하루 앞둔 장군, 비무장지대(DMZ) 목함지뢰 폭발 당시 사고를 당했던 김정원 하사, 밥통을 들고 포즈를 취한 취사병, 낙하 1000번을 해야 받을 수 있다는 황금공수를 단 특전교육단 주임원사, 아흔의 나이에도 카메라 앞에서 군인다움을 보이고자 했던 노병. 지난 4년여간 사진작가 현효제씨(37.사진)의 흑백 렌즈에 담긴 이들이다.
20일 서울 성수동 스튜디오에서 만난 현씨는 2013년부터 찍은 군인만 2000여명, 전국의 군 부대만 50곳 정도 된다고 했다.
지난 14일 서울 동대문디자인플라자(DDP)에서 '나는 군인이다(I am a Soldier)' 전시를 마쳤고 특전사.상무대 등 각종 부대 시리즈, 군복 시리즈 등은 그가 보인 군인 연작 시리즈들이다.
육군 소위로 임관한 장교 6명의 변천사를 매년 기록하는 작업은 그중 장기 프로젝트다. 대한민국 육군 창군 70년 이래 사병부터 참전용사, 국가유공자까지 찍는 거대한 프로젝트는 없었다.
최근엔 판문점에서 근무하는 중립국위원회(NNCS) 소속 스위스 군인이 먼저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해 왔다.
그렇게 해서 유엔사 정전위원회(UNCMAC)의 군인들을 찍었고, 조만간 주한 미군으로까지 작업이 확대된다. 군인의 표정, 군인의 신념을 찍어보겠다는 애초의 프로젝트가 이미 국경을 넘어선 것이다.
여정의 시작점은 2013년 육군 제1보병사단에서 부대 소개 영화를 제작하면서 맺게 됐다. 오십줄에 들어선 한 직업군인과의 진솔한 대화가 그의 마음을 강하게 끌어당겼다고 했다.
"군과 조국에는 부끄러움이 없지만 GOP 등지에서 30년간 군 생활을 하면서 미처 두 아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제대로 보지도 못했고, 변변한 사진첩 하나 없어 아버지로선 부끄럽다"는 고백이었다.
![[fn이사람] 군인 찍는 사진작가 현효제씨 "군인 2000여명의 삶, 렌즈에 담아"](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16/09/20/201609201428225654_l.jpg)
"이 사람들의 생을 관통하는 무언가를 찾아내야겠다. 그게 시작이었어요." 군인의 표정, 군인의 신념을 찍어보겠다는 애초 생각은 이미 4년이 지났고 이제 중반을 달려온 것 같다고 했다. 재능기부로 시작한 탓에 지출도 컸다.
"최고의 사람들을 찍기 위해 최고의 카메라와 조명부터 구입했다"면서 웃음을 지어보였다. 장비 값.교통비.숙박비 등 2억원 넘는 사비가 들어갔다.
미국에서 사진을 전공한 그는 사실 흑백사진을 즐기는 작가로 유명하다. 군인 시리즈는 전작인 '나무의 초상화'전(2014년), '영혼의 울림 손'(2010년)과 닮아 있다. 나무의 초상전에선 세계 각지의 숲을 다니면서 적외선 특수카메라 렌즈로 나무의 명암만 발라내는 작업을 했다. 나무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였다.
"주관과 편견을 배제한 채 그 일을 하면서 배어나는 신념 어린 표정을 담고 싶었어요. 다른 느낌, 다른 가치는 배제한 오로지 그들 그대로의 모습이요. 그러기 위해선 주관이 개입된 색 대신 흑백사진으로 작업한 거죠."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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