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다

이세경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09.22 17:29

수정 2016.09.22 17:29

[기자수첩] 지금은 틀리고 그때는 맞다

꽤나 망설이며 글 문을 연다. 어느 때보다 신중해야 한다. '기레기'와 '기자'의 경계선에 아슬아슬 서야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이 아니면 영영 할 기회가 없을 것이다.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 시행을 1주일 앞둔 12년차 기자의 얘기다.

'더치페이(각자 계산)'는 여전히 낯설다.
친한 친구일수록 '이번에 내가 살 테니, 다음에 네가 사라'가 익숙하다. 얻어먹는 건 마음이 불편하고, 내 몫만 달랑 지불하는 것은 왠지 정이 없다. 이번에 내가 사고, 다음에 네가 사지 않더라도 상관하지 않는다.

기자로 사람을 만날 때도 더치페이가 익숙지 않은 것은 마찬가지다. 하지만 상황은 정반대다. 기자가 취재원으로 만나는 사람은 으레 기사도 주고, 밥도 산다. '이번에도 네가 사고, 다음에도 네가 사고, 그다음에도 네가 사는' 상황이 늘 벌어지는 것이다. 그렇다고 '이만큼 얻어먹었으니 다음엔 내가 사야지'란 생각은 해본 적이 없다. 민망하고 불편했던 마음은 수습을 떼고, 초짜 태를 벗으며 함께 사라졌다.

이런 '관행'을 '부정청탁'이라고 했을 땐 발끈하기까지 했다. 함께 밥을 먹고 술을 마시는 취재원이 많을수록 능력 있는 기자라고 여겼다. '호의'를 '권리'로 알고, '권력'인 양 의기양양한 꼴이다. 정말 부끄러운 건, 부끄럽단 것조차 모르고 지냈다는 사실이다.

조금 더 솔직해지자. 김영란법 시행이 결정된 이후 가장 걱정한 것은 '3만원 안에서 뭘 먹을 수 있을까'였다. 더치페이가 필요하다는 생각은 꿈에도 못했다. 10년 넘게 몸에 배어든 관행은 법의 힘을 빌리지 않고선 빼내기 어렵다는 걸 비로소 인정한다.

28일 이후 많은 것이 변할 것이다. 곧 유야무야될 거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다. 그렇다 해도 상관없다. 당연했던 일상이 폐습인 걸 깨닫고, 한번쯤 스스로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사회는 충분한 변화 가능성이 있는 영란(榮卵)을 품게 될 것이다.

변화가 답답한 족쇄처럼 느껴진다면, 스스로 깊이 반성해야 한다. 도저히 적응이 되지 않는다면 옷을 벗길 권한다. 잘못된 권력이라면 변화를 위해 마땅히 스스로 내려놓는 것이 옳다. 당신이 '호시절'이라 여기는 지금은 틀리고, '답답한' 그때가 올바른 시대이기 때문이다.

3만원이란 기준은 '면죄부'가 아니다. 더치페이가 낯설고, 상사나 연장자가 돈을 내는 것이 미덕인 문화의 특수성을 감안한 '완충장치'일 뿐이다.
3만원 안에서 정당성을 찾는다면 세상은 바뀌지 않는다. 본질은 생각을 바꾸는 것이다.
이건 스스로에게 당부하는 말이다.

seilee@fnnews.com 이세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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