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김영란법의 역설’ 서민들만 고달프다

정대균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03 17:24

수정 2016.10.03 21:58

손님 사라진 고급음식점 "직장 잃을라" 직원들 초조
대리운전기사들도 직격탄
텅 빈 주말 골프장 "성수긴데도 일이 없네요" 수입 확 줄어든 캐디들
공연계도 한숨소리뿐
생계 막막해진 소극단들 더 팍팍해진 배우들 생활
공직자 등의 부패와 부정청탁 문화를 근절하자고 도입한 '부정청탁 및 금품수수 금지법'(청탁금지법·일명 김영란법)이 지난달 28일부터 시행되면서 되레 사회적 약자를 삶의 터전에서 내모는 등 부작용이 속출, 후속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음식점 등의 손님이 급감, 종업원이 감원 위험에 노출되는가 하면 대리운전 기사들은 생계를 걱정하며 한숨을 쉬고 있다. 화훼농과 한우농민들도 급감한 수요에 생업을 위협받고 골프장 캐디, 식음파트 종사자들은 감원 가능성에 긴장하고 있다.

■고급음식점, 구조조정 '걱정'

김영란법 시행 이후 한식당, 일식당, 서양식 레스토랑 등 고급 음식점들은 대대적 인력 구조조정을 걱정하고 있다. 국내외 주류를 판매하는 주점은 더 심각하다. 대개 음식값에 술값을 더하면 김영란법상 한끼 식사비용 상한선인 3만원을 훌쩍 넘기 때문이다.


서울 종로에서 한식당을 운영하는 김모씨는 3일 "아직 문을 닫을 정도는 아니지만 앞으로 매출 감소에 대비, 감원을 우선 검토하고 있다"고 전했다. 일식집 종업원 김모씨(41)는 "손님이 많이 줄어든 데다 그나마 간단한 식사에 반주만 하고 자리를 끝내는 경우가 많아 식당 전체 매출 하락으로 종업원을 줄이는 게 아니냐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이따금 받던 팁도 없어졌다"고 말했다. 식당 종업원 김모씨(42.여)는 "김영란법 시행 이후 직원들이 아르바이트로 전환되고 있고, 이런 상태가 계속되면 알바 자리마저 위협받을 것"이라고 걱정했다. 충무로 인근 주점 관계자는 "김영란법이 공무원, 기자 잡겠다며 상대적으로 취약한 계층을 힘들게 한다"고 불만을 털어놨다.

한우 사육 및 농수산물 재배 농가, 화훼농가도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유통업계가 일제히 법 상한선 금액을 맞추기 위해 별도의 상품 기획에 나섰기 때문이다. 한우의 경우 5만원 미만 가격으로 선물포장 세트 구성이 사실상 불가능해 결국 한우농가와 화훼 재배 농민들에게 상당한 피해가 불가피할 것으로 우려된다.

BC카드에 따르면 김영란법 시행 직후인 9월 28~29일(수·목요일)과 4주 전 같은 요일(8월 31일~9월 1일)의 '법인카드 이용액'을 비교 분석한 결과 요식업종의 법인카드 결제액은 8.9%, 주점업종은 9.2% 감소했다. 특히 한정식집 법인카드 사용액은 김영란법 시행 4주 전보다 17.9% 감소했다. 중국음식점은 15.6% 줄었고, 일식집에서는 6.0% 감소했다.

■대리운전, 골프장 '직격탄'

대리운전을 찾는 수요도 급감, 대리기사들이 위기감에 휩싸여 있다. 김종용 전국대리기사협회 회장(58)은 "일반 대리운전 주문은 큰 영향이 없지만 고급 룸살롱, 법인 주문은 9월부터 절반 이상 줄었다"고 말했다. 11년차 대리운전 기사인 A씨는 "음식점마다 손님이 줄어 앞으로 생계에 타격이 크지 않을까 걱정이 많다"고 설명했다.

골프장은 뚝 떨어진 예약으로 분위기가 예사롭지 않다.

경기 여주 A골프장 L대표는 "그린피를 2만원가량 할인하는데도 팀 수가 다 채워지지 않는 데다 설상가상으로 객단가(일인당 평균 매출)마저 대폭 줄어 프로숍 판매율은 10분의 1로 감소한 상태"라며 "그런 상황에서 식음 매출도 당연히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밝혔다. 경기 광주 E골프장의 한 캐디는 "요즘 같은 성수기에는 아침 이른 조로 나가면 하루에 2라운드가 가능하지만 겨울 비수기가 다가오는 상황에서 다른 일자리를 알아봐야 할 것 같다"고 전했다.

■연극 등 공연계도 '울상'

공연계 역시 김영란법 영향으로 타격을 입기는 마찬가지다.
특히 고가의 클래식과 대형 뮤지컬 등에 대한 기업 후원과 홍보에 비상이 걸렸다.

한 오페라 제작사 관계자는 "내년도 기업 후원을 받기가 쉽지 않을 것 같다"며 "티켓 판매를 기업에 상당 부분 의존해왔는데 이것이 막히면 제작비 충당부터 어려워질 수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서울 대학로에서 연극배우로 활동 중인 조모씨(45)는 "단체관람의 경우 회사 또는 동호회 등에서 티켓을 구입, 직원이나 회원들이 함께 관람하는 사례가 많았는데 이제 청탁이나 편의제공 등으로 간주돼 5만원 미만이라도 구입이 줄어들 것"이라며 "이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극단은 더욱 힘들어지고 배우들의 삶은 더 고달파질 것"이라고 예상했다.

golf@fnnews.com 정대균 골프전문기자 김경수
이병철 조윤주 김문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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