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산업일반

여성가족부 의욕만 앞선 초라한 '작은 결혼식'

이태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06 17:46

수정 2016.10.07 15:01

정부 추천 공공기관 결혼식장 가보니.. 
홈페이지 통해 장소 추천만 해놓고 관리 안돼
전시실.강당 등 활용.. 결혼식 한건도 못한 곳도
여성가족부가 작은결혼정보센터 홈페이지에 예식장소로 추천하고 있는 서울 시내 한 구청 강당의 모습. 해당 장소에서는 6일 현재까지 한 건의 결혼식도 진행되지 않았다.
여성가족부가 작은결혼정보센터 홈페이지에 예식장소로 추천하고 있는 서울 시내 한 구청 강당의 모습. 해당 장소에서는 6일 현재까지 한 건의 결혼식도 진행되지 않았다.

최근 허례허식을 없앤 '작은 결혼식'을 선호하는 예비부부가 늘고 있다. 정부도 몇 년 전부터 작은 결혼식 문화를 장려하기 위해 발 벗고 나서고 있다.

그러나 제대로 준비하지 못한 채 의욕만 앞서 '작아도 너무 작은' 결혼식을 장려하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6일 웨딩업계에 따르면 어설픈 정책으로 자칫 작은 결혼식이 초라한 결혼식으로 잘못 비춰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여성가족부는 지난 2012년부터 작은결혼정보 홈페이지를 개설하고 작은 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전국의 공공기관을 추천하고 있다. 대관료는 보통 10만원 이하로 낮은 수준이다. 그러나 썰렁한 강당에 철제의자만 놓아뒀거나 운영 중인 공장 전시실 등을 작은 결혼식장으로 추천하는 등 제대로 된 준비가 부족했다는 지적이다.

작은결혼식을 준비하고 있다고 밝힌 이모씨(29)는 "소박한 결혼식을 하겠다는 것이지 성의 없는 결혼식을 올리고 싶지는 않다"며 "돈도 돈이지만 제대로 된 장소를 찾기가 어려워 그냥 일반 결혼식을 준비해야 하나 싶기도 하다"고 털어놨다.

여가부가 작은결혼식장으로 추천하고 있는 공공기관들은 제대로 관리도 되고 있지 않았다. 홈페이지에 올라와 있는 역촌노인복지관, 서대문구청, 고척그린광장 등 상당수 작은결혼식장에서는 6일 현재까지 1건의 결혼식도 진행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여가부는 홈페이지 개설 당시 작은결혼식 대관을 허락한 공공기관들을 대상지에 올려놨지만, 실제 운영 능력이 있는지 여부는 확인하지 않아왔다.

작은결혼식장 대상으로 올라온 한 공공기관의 관계자는 결혼식을 준비할 수 있느냐는 기자의 물음에 "처음 듣는 이야기"라고 헛웃음을 치기도 했다. 또, 홈페이지 공고를 보고 문의전화를 했다는 질문에 "도대체 어디에 그런 공고가 올라와있냐"며 도리어 반문하는 담당자도 있었다.

작은결혼식을 올릴 수 있는 곳이라 해도 이용자가 추가로 준비할 부분이 너무 많은 것도 문제다. 여가부가 추천하는 작은결혼식장에서는 텅 빈 장소만 빌려줄 뿐 어떤 서비스도 제공되지 않는다. 제휴를 맺고 있는 업체도 따로 없어 결혼식을 준비하는 예비부부가 예식장 꾸미기부터 출장뷔페, 조명, 방송시설 등을 모두 개별적으로 준비해야 한다.

지난 7월 경기도의 한 공공기관에서 작은결혼식을 진행했다는 한 부부는 출장뷔페를 섭외해 100인 기준 1인당 3만3000원을 지불했다고 밝혔다. 이는 비슷한 지역 내 일반 결혼식장의 1인당 3만2000~3만5000원 선과 별반 차이가 없는 가격이다.

여가부는 지난달 30일 국내 최초로 작은결혼식 박람회를 여는 등 허례허식 없는 결혼 문화 장려에 적극 나서고 있다. 그러나 화려했던 박람회와 달리 준비하고 있는 내용은 부실해 오히려 작은 결혼 문화에 반감을 줄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한 웨딩업계 관계자는 "작은 규모의 결혼식이 인기를 끌면서 웨딩 업계에서도 가격을 낮춘 알뜰 패키지 등을 속속 출시하고 있다"면서 "무조건 저렴한 가격을 내세우기 보다는 예비부부들이 만족할만한 수준에서 합리적인 가격을 제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설명했다.

여가부도 작은결혼식장의 양적인 확대 보다는 질적인 개선에 신경 쓰겠다는 입장이다.
여가부 관계자는 "일정 서비스 이상의 기준을 제시하는 매뉴얼을 만들어 작은결혼식 대상지인 공공기관 담당자에게 배포할 예정"이라며 "향후 작은 결혼식에 성공한 이들의 사례집을 만들어 배포하는 등 작은결혼 문화 확산에 지속적으로 노력을 기울이겠다"고 설명했다.

golee@fnnews.com 이태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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