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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장클릭] 금통위 의사록 실명공개 꺼리는 한은

조은효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16 17:47

수정 2016.10.16 21:40

[현장클릭] 금통위 의사록 실명공개 꺼리는 한은

"(금리결정에 대한) 금융통화위원회 의사록 실명 공개는 금통위원의 자유로운 의견 개진과 소신 있는 정책결정을 제약할 수 있다."

이번 국정감사에서 금융통화위원 7인의 기준금리 결정 과정을 담은 통화정책방향 회의 의사록을 실명으로 공개해야 한다는 모 국회의원의 질의서에 대한 한국은행의 공식 답변이다.

한은 금융통화위원의 임기는 4년이다. 한은 총재와 부총재를 제외한 5명에겐 연봉(일인당 약 2억6700만원)을 포함해 연간 31억3138만원이 지급된다.

이들에겐 정부 차관급 예우가 주어지며 차량과 운전기사가 제공되고, 해외출장 시엔 비즈니스석을 탈 수 있다. 나아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등 세계 유수의 경제계 인사들과 교류할 수 있으며, 퇴임 이후에도 무려 4년간 한국의 기준금리를 좌지우지하는 '7인의 현인'(금통위 구성 인원)이었다는 점을 평생 명예로 여길 수도 있다.
그런 그들의 의사록 실명 공개와 '자유로운 의사개진' '소신 있는 정책결정' 사이에 도대체 무슨 상관관계가 있다는 건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매달 대한민국의 기준금리 결정이 이뤄지는 한은 금통위는 외부에 공개되지 않는 '블랙박스'다.

원칙적으론 금통위 의장인 한은 총재와 나머지 6인의 금통위원들이 금리결정을 놓고 한 표씩 나눠갖는다는 측면에선 '집단지배 체제'이나 회의실 밖에선 철저히 총재 뒤에 숨는 걸 미덕으로 여긴다. 그래서 붙은 별명이 '은둔의 현자'다.

경제상황에 대해 국민과 소통하기 위한 외부강연도 기피요, 한 달에 한 번 하는 기준금리 결정에 대한 의사록조차 철저히 익명성 뒤에 숨기를 원한다.

현재 한은이 금리결정 후 2주 뒤 40쪽 내외로 요약해 공개하는 의사록은 그야말로 퍼즐이다. 주어는 온통 '한 금통위원은' '동 위원은' '또 다른 금통위원은' '일부 위원은'이다. 어느 위원이 어떤 경제지표를 중시했으며 그래서 어떤 판단을 내려 어떻게 기준금리를 결정했는지 연결고리를 찾기 어려운 구조다. 설령 읽는 사람들이 퍼즐을 맞춰간다 하더라도 "그 발언은 내 발언이 아니다"라고 부인해버리면 끝나는 일이다.

심지어 최근 만난 한 금통위원조차 "의사록을 펼쳐봤는데 내 발언이 어떤 것인지 몰라 한참 헤맸다"고 말할 정도다. 내년부터는 연 12회인 금통위 통화정책방향 회의가 연 8회로 줄어든다. 단서가 줄어들면서 퍼즐은 더 복잡해질 수밖에 없다. 시장과의 소통은 더욱 어려워진다.

대한민국 어디에도 이런 차관급 인사들은 없다. 정부의 5급 사무관들조차 정책실명제에 따라 자신의 이름을 붙인 정책을 내고, 한은 집행이사들의 카운터파트인 기획재정부 차관과 1급 공무원들도 자신의 공개 발언에 책임을 진다. 헌법재판소 재판관들도 실명으로 판결을 내는 마당에 대한민국의 경제를 좌지우지하는 금통위원들이 익명성 뒤에 숨는 이유를 도저히 알 수가 없다. 지극히 오만하고 무책임한 태도가 아닐 수 없다. 그리고선 "금통위의 금리결정은 정부로부터 독립적"이라고 주장한다. 독립적인 판단을 내렸는지 아닌지 알 길이 없는데 말이다.

보통 한 국가의 의사결정 과정은 '블랙박스'로 묘사된다.
밖에선 도통 들여다볼 수 없는 암실, 그런 은밀한 곳에서 소수의 사람만 국가의 명운을 쥐고 흔든다 해서 붙은 정치학계의 용어다. 후진적일수록 암실의 폐쇄성은 심해진다.
금통위 의사록 실명공개는 시장과의 소통, 금통위원들의 책임성 강화, 국민의 알권리 차원 그리고 정부로부터 독립성 확보를 위해서도 필요한 조치다.

ehcho@fnnews.com 조은효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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