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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산책] 청란 '추잉껌 페이퍼'..드럼 위 껌종이의 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17 17:21

수정 2016.10.17 17:21

[그림산책] 청란 '추잉껌 페이퍼'..드럼 위 껌종이의 꿈


1981년 네이멍구(내몽골)에서 태어난 청란은 변화하는 중국의 큰 흐름 한가운데 놓인 바링허우 세대(1980년대 출생자) 중 하나다. 대개의 중국 젊은이들과 마찬가지로 급격한 경제성장 속에서 자란 작가의 초기 비디오 작품에 해당하는 '추잉껌 페이퍼'는 그의 밴드 활동 경험에서 비롯됐다. 그에게 음악은 감각과 움직임을 결합한 젊음을 상징한다.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예술이며, 동시에 노래하고 손뼉 치고 악기를 연주하는 등의 행위를 통해 타인과 감정 교환이 이뤄지는 까닭에 대중사회가 되면서 다른 예술보다 앞서 시대의 젊음을 대변해왔기 때문이다. 동시대 문화와 음악, 유럽 아트하우스 영화에 관심이 많았던 청란의 초기 작품은 이처럼 음악을 모티브로 해 움직임과 이미지를 담아낸 작품이 많다.



돌돌 말린 작은 은색 껌종이 뭉치가 흩어져 있는 드럼의 표면은 미세하게 떨리기 시작한다. "I have a dream(나는 꿈이 있습니다)." 전 세계인의 마음을 흔든 마틴 루서 킹 목사의 저명한 연설에 나온 네 어절이 마치 최면을 걸 듯 반복되며 만들어낸 진동이 드럼의 표면에 전해진 까닭이다.
"I have a dream." 이내 고조된 킹 목사의 목소리에 맞추어 드럼의 표면은 격렬하게 떨리고, 그 위에 놓인 껌종이는 팝콘 기계 속 옥수수처럼 튀어올랐다 가라앉기를 반복한다.

살기 힘든 현재를 한탄하는 단어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드럼 위에 놓인 조그만 껌종이와 웅장하게 울리는 킹 목사의 목소리의 결합은 역설적으로 느껴진다.
껌종이를 튀어오르게 하는 것은 세계를 움직인 이의 강한 신념일까. 아니면 현재를 견디기 위해 결코 이뤄지지 않을 미래의 꿈을 또 한번 주지하는 희망고문일까. 늘어진 킹 목사의 음성으로 예상하건대 그의 꿈이 오늘의 세대에 닿기에는 이미 시간이 너무 흘러버린 것은 아닐까. 부디 지금은 껌종이와 같이 보잘것없는 젊은이들의 작은 움직임이 미래에 반짝이는 광활한 은하수를 이룰 수 있기를 기대한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