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 전시·공연

[그림산책] 부지현 '균형과 불균형'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0.31 19:12

수정 2016.11.02 19:30

낯선 빛과 소리의 경험
[그림산책] 부지현 '균형과 불균형'

지하에서 들리는 알 수 없는 소리에 좁은 계단을 타고 내려와 마주한 것은 부지현 작가의 '균형과 불균형'(2016년)이 빚은 빛과 어둠이다. 얼마나 흘렀을까. 어둠에 익숙해지자니 즉석사진 속 이미지가 또렷해지듯 어둠을 뒤로한 푸른 빛의 구조물이 형태를 드러내기 시작한다. LED 조명과 액체가 담긴 아크릴 실린더, 실린더를 받친 스피커 부품이 하나의 유닛을 이루어 천장에서 각기 다른 길이로 매달렸다. 각 부품에 달린 선들이 어지러이 걸려 있는 가운데 높낮이가 다르게 매달린 스피커와 실린더의 무리는 넓은 유선형의 구조물을 이룬다. 스피커에서 발생하는 진동이 실린더에 담긴 물에 전해진 까닭에 공간을 감싼 푸른 빛은 지속적으로 미세하게 흔들린다.



사방에서 들리는 높낮이가 없는 기계적인 소리마저 익숙해질 즈음 걸음을 좀 더 진전해보기로 한다. 구조물을 따라 공간의 중심부로 이동하자 사방으로 펼쳐진 인공적인 푸른 빛과 흔들리는 물의 표면은 더욱 촉각적으로 느껴진다. 기둥을 감싼 흑경에 비친 공간과 내가 서있는 실제 공간의 경계가 흐려지고 거리감이 사라진다. 손으로 만져질 듯한 액체, 몸으로 느껴지는 진동, 바로 앞에서 느끼는 빛의 자극이 증폭된 감각적인 공간을 구현한다.

일상적인 신체 감각의 경험을 넘어선 경험에 도달하고자 하는 시도는 이제 현대미술에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빛, 소리, 진동, 연기와 같은 비물질적 요소를 가지고 공간, 거리, 선, 면, 점, 공기, 색, 어둠 등 감각이 인지하는 낯선 경험으로 관람자를 안내하는 것이다.
더욱이 조형과 테크놀로지의 정교한 결합, 온·오프라인의 모호한 경계, 건축물과 대중문화의 스펙터클에 둘러싸인 현대인의 일상에 뮤지엄은 또 하나의 특별한 감각의 몰입을 유도하는 공간으로 자리잡았다. 우리의 정교한 시각, 청각, 촉각의 대상이 되었던 빛, 진동, 소리가 지배한 공간은 작품을 벗어난 순간 엉켜진 전선과 스피커 부품 덩어리가 놓인 낡은 지하공간으로 변신한다.
언제나 그렇듯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야 하기 때문이다.

류정화 아라리오뮤지엄 부디렉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