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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나루] 김영란법과 더치페이

김충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6.11.08 17:21

수정 2016.11.08 17:21

[여의나루] 김영란법과 더치페이

'청탁금지법', 이른바 김영란법이 시행된 지 한 달여가 지나고 있다. 기껏해야 총 24개 조문에 불과한 법률치고는 사회적 파장이 만만치 않다.

아직도 법의 적용에 있어 애매모호한 부분이 많다는 평가도 있고, 지금까지의 관행들에 대해 법의 잣대가 너무 엄격하다는 볼멘소리도 들린다. 지난 국정감사장에서는 학생들이 선생님께 드리는 카네이션도 명백한 법 위반이라는 권익위의 유권해석에 비아냥거림도 있었다. 여하튼 법 위반 여부의 모호성과 관계당국의 처리지침 정리에는 앞으로도 상당시간이 걸릴 것 같다. 일테면 최종 법 위반을 사법당국에서 판정해 이를 기초로 한 판례나 사례 집적이 충분히 이뤄져야 사회적으로 양해가 되는 관례가 정착될 것으로 예상된다.


그래서 요즘 우리 주변에서는 일단 몸조심하자는 기류가 주류인 듯하다. 그리고 당초 법 시행의 부작용으로 지적됐던 현상도 일부는 현실화되고 있는 듯하다. 바로 내수경기 위축이 그렇다. 구체적 통계가 나오진 않았지만 법 시행 이후 고급 외식업계의 매출이 급격히 감소하고 골프장의 주말 부킹이 현저히 줄었다는 얘기가 전해진다. 또한 결혼식장이나 장례식장에서도 눈에 띄게 화환 숫자가 줄었다. 소상공인의 한숨소리도 곳곳에서 들려온다.

이에 반해 김영란법의 긍정적인 효과에 대해서는 아직 유보적인 생각들인 것 같다. 그도 그럴 것이 입법취지인 부정청탁 금지나 금품수수 방지 등의 효과는 구체적인 숫자로 나타나는 것도 아닐 뿐 아니라 법 시행이 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성과를 피부로 느끼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분명 우리가 체감하지 못할 뿐 긍정적 변화는 있다고 믿는다. 익숙하지는 않지만 저녁 약속이 눈에 띄게 줄어들고, 이를 어떻게 활용할지 고민하는 것이 필자만의 생각은 아닌 것 같다. 어찌 보면 가정생활 면에서나 사회적으로나 건전한 발전이 아닌가 생각한다.

또한 더치페이 문화 확산도 그렇다. 본래 더치페이의 출발이 네덜란드식 계산법이었다고 하듯이 아직은 인간적이지 않고 계산적인 것 같아 함께 자리한 사람에게 미안함마저 생기곤 한다. 하지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자연스레 각자 계산의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걸 보면 낯설긴 하지만 투명하고 청렴해진다는 느낌이 든다. 특히 필자처럼 연장자나 선배라는 이유로 혼자 계산을 해왔던 입장에선 부끄럽지만 적지 않은 부담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었다. 이제 필자에게도 더치페이가 부끄럽지 않도록 빠른 문화 확산을 고대해 본다.

김영란법의 시행에 즈음해서 강연에서 들은 얘기가 있다. 이 법의 취지가 명칭에서 주는 규제 또는 방지를 위한 것이라기보다는 오히려 공직자들을 보호하기 위한 법률이라고 강조하고 싶다고 한 말이다. 맞는 말일 게다.
인간적이지 못하다는 체면 탓에 너무도 타성화돼버린 청탁문화가 어쩌면 당연시됐던 게 우리의 현실이었지만 이제는 벗어나야 한다.

낯설지만 싫지만은 않은 문화가 익숙해질 때가 되면 우리 곁에 더 이상 청탁문화가 사라지고 없을 것이다.
4만달러 소득의 선진국으로 도약하려는 국가가 부정부패가 극심하다는 꼬리표(2014년 부패지수 175개국 중 43위, OECD 34개국 중 27위)로 국격에 발목이 잡혀서야 되겠는가. 다소간 불편하고 부작용을 감수하더라도 이 법 제정을 계기로 깨끗하고 투명한, 그리고 공정한 사회를 만들어가는 데 우리 모두 지혜를 모아야 할 것이다.

정의동 전 예탁결제원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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