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장칼럼] 기업 준조세 방지 근본대책 필요
우병우 전 청와대 민정수석이 22일 청문회에 모습을 드러냈다. 18명의 여야 국정조사특위 의원은 벼르고 벼른 듯 우 전 수석을 몰아붙였다. 특위 의원들은 민정수석으로서 최순실의 국정농단을 방조했거나 공모한 의혹의 실체를 밝히는 데 전력투구했다. 그러나 18대 1의 싸움은 허무했다. 우병우의 완승이었다. 그의 입에서는 특위 의원들이 원하는 답변은 단 한 마디도 들을 수 없었다. 되레 일부 의원의 도피 행각 질문에는 "답변하고 싶지 않다"거나 중복된 질문은 "이미 답변한 내용이다"라고 일축했다. 박근혜 대통령과 김기춘 전 비서실장을 존경하느냐는 물음에는 "지금도 존경한다"고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집중포화 속에서도 흔들림은 찾아볼 수 없었다. 2009년 대검 중수부 1과장 시절 노무현 전 대통령을 직접 심문했던 그다웠다. 법조 출입 시절 우병우 검사에 대한 검찰 내 평판도 '깐깐하고 틈이 없다'는 것으로 기억한다. 산전수전에 공중전까지 겪은 그를 무릎 꿇리기에는 특위 의원들의 창은 너무 무뎠다. 우병우는 '해볼 테면 해봐라'라는 자세였다.
그런데 보름 전 9개 그룹 총수가 출석한 1차 청문회 분위기는 어땠나. 1차 청문회는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게 80% 이상의 질문이 쏟아지며 사실상 '삼성 청문회'였다. 이 부회장도 13시간이 넘는 청문회에서 우 전 수석처럼 부단히 의혹에 대해 설명했다. 삼성물산 합병의 대가성이 없다거나 승마 지원 사실을 사전에 전혀 인지하지 못한 점을 적극적으로 방어했다.
그럼에도 이날 삼성의 사령탑인 '미래전략실' 해체와 '전국경제인연합회 탈퇴'를 반강압적으로 약속해야 했다. SK, LG 등 다른 그룹 총수들도 전경련 탈퇴를 의원들 앞에서 다짐했다. 청문회 이후에도 이 부회장은 특검 수사 전부터 출국금지를 당해 최소 내년 2월까지 꼼짝 못하는 신세가 됐다. 내년 1월 초 열리는 세계 최대 정보기술(IT) 박람회인 소비자가전쇼(CES) 2017과 전 세계 경제 거물들이 모이는 스위스 다보스포럼도 불참이 불가피하다. 삼성그룹의 연말 인사와 조직개편도 무기한 연기된 상태다. 특검 대비로 최악의 경영환경이 예상되는 내년을 대비해 사업계획을 짤 여력도 없다. 한국을 대표하는 초일류 기업이 정치 이슈에 휘말려 주요 경영사안을 챙기지 못하는 '블랙아웃'에 빠진 것이다.
이번 사태의 본질이 정경유착이라는 점에는 동의한다. 그렇다고 기업인 옥죄기식 진실 규명이 정경유착의 해법은 절대 될 수 없다. 청문회를 지켜보면서 정치권력에 한없이 약한 경제권력을 목도하지 않았는가. 기업인 몇 명을 곤경에 처하게 한다고 정경유착이 척결되는 게 아니다. 시간이 흐르면 언제든지 살아날 불씨다. 누구도 엄두를 낼 수 없는 근본적인 '메스'를 대야 한다. 그런 점에서 '준조세 금지' 입법이 가장 현실적인 답 같다. 준조세로 불리는 기업 출연금은 정부가 부족한 재정을 세금 외에 조달하는 편법이자 관행이다. 차제에 미르.K스포츠재단이나 청년희망펀드처럼 정부가 출연금을 모집하거나 요구할 수 없는 '정경유착 금지법'을 서둘러 마련해야 한다. 그 몫은 다름 아닌 청문회 의원들의 것이다.
[email protected] 최갑천 산업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