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배신에 절치부심 통산 525개 ‘아치’ 그려
30년만에 마약복용 체포 “후회된다” 통한의 눈물
30년만에 마약복용 체포 “후회된다” 통한의 눈물
![[성일만 야구선임기자의 핀치히터] ‘야구 드라마’ 쓴 재일동포 기요하라를 아십니까?](https://image.fnnews.com/resource/media/image/2016/12/26/201612261859579973_m.jpg)
한 친구는 프로야구 진출을 희망했다. 또 다른 친구는 명문 와세다대에 입학하기로 했다. 모든 것이 순조로웠다. 그러나 갈등이 없으면 드라마가 성립되지 않는다. 갈등의 단초는 늘 그렇듯 친구의 배신이었다.
기요하라 가즈히로(사진)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가고 싶었다. 어렸을 적부터 꿈이었다. 요미우리의 오 사다하루(왕정치) 감독은 늘 기요하라를 스카우트하고 싶다고 말해왔다. 그런데 정작 구와다 마스미를 1순위로 지명했다.
어라, 뭐지? 구와다는 대학에 가기로 되어 있었다. 요미우리가 괜히 지명권 하나를 날릴 구단이 아닌데. 둘 사이에 뭔가 있나? 기요하라는 6개 구단으로부터 1순위 지명을 받았다.
마침내 입학시험이 치러지는 날. 구와다는 고향인 오사카에서 신칸센을 탔다. 도쿄역에는 수많은 기자들이 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구와다는 나타나지 않았다. 이미 다른 역에서 내린 후였다.
구와다는 대학에 가지 않고 요미우리에 입단했다. 그간의 언행은 모두 트릭이었다. 일찌감치 대학 진학 의사를 밝혀 다른 구단의 시야에서 벗어났다. 모두가 기요하라에게 몰려간 사이 요미우리는 슬쩍 구와다를 낚아챘다.
기요하라는 세이부에 입단했다. 기자회견서 기요하라는 "요미우리든 구와다든 결코 용서하지 않겠다"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그 말을 하는 기요하라의 뺨에 눈물이 흘러내렸다.
기자는 기요하라의 팬이었다. 재일동포 야구선수 감별사인 한재우 선생으로부터 기요하라 집안에 대한 얘기를 전해 들었다. 기요하라가 재일동포라는 사실을 알게 됐다. 충북 청원(淸原)이 윗대의 고향이라고 했다. 그래서 기요하라(淸原)라는 성으로 바꿨을 것이다.
세이부 모리 마사아키 감독은 "기요하라의 육성이 당시 가장 큰 과제였다"고 그의 전기에서 밝힌 바 있다. 1986년 고졸 신인에게 입단 첫해 4번 타자를 맡겼다. 그나마 부담을 덜어주기 위해 개막 경기는 출전시키지 않았다.
두 번째 경기서 기요하라는 4번에 기용됐다. 첫 타석은 볼넷. 두 번째 타석서 홈런을 날렸다. 프로 첫 안타이자 첫 홈런. 그해 기요하라는 31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고졸 타자 신기록이었다.
기요하라는 1997년 FA로 요미우리와 계약했다. 11년 만에 요미우리 입단 꿈을 이루었다. 구와다와도 화해했다. 기요하라는 2008년 은퇴했다. 통산 525개의 홈런을 때려냈다.
그로부터 8년 뒤인 지난 2월 기요하라는 마약 복용 혐의로 체포됐다. 징역 2년 6개월 집행유예 4년 판결을 받았다. 기요하라는 후회라는 단어를 언급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를 지켜본지 어언 30년이다. 다신 눈물 흘릴 일이 없었으면 한다.
texan509@fn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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