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철저한 고증·자료수집.. 옛 총재 집무실·회의실 재현

"의안 제200호 한국은행 통화안정증권의 발행 최고 할인율 및 기간 결정을 상정하겠습니다." "통안증권의 최고 할인율은 8%, 기간은 90일 만기로 정하고자 합니다." "지금 통안증권은 금융기관을 상대로 하는 것인데 남용될 가능성은 없습니까?"
1961년 11월 16일 한국은행 금융통화위원회가 우리나라 최초의 통화안정증권을 발행하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 회의를 가졌던 당시 대화다. 50년도 넘게 지난 2017년, 이 회의가 360도 가상현실(VR) 영상으로 생생하게 살아났다.
3일 새롭게 문을 여는 한은 화폐박물관 2층 기념홀에 가면 이 같은 회의 장면을 포함, 1950년 6월 12일 첫 업무를 개시한 한국은행의 발자취를 직접 따라가 볼 수 있다.
지난 1년간 철저한 고증과 자료수집에 매달려온 심원보 한은 화폐박물관 반장은 기념홀 개관을 며칠 앞둔 지난해 12월 30일 인터뷰에서 "금통위원들이 앉는 의자의 등받이 모양, 창문의 커튼, 테이블 위 커피잔 하나까지 세심한 고증 과정을 거쳤다"고 말했다.
역대 24명의 한은 총재 초상화를 한쪽 벽면에 전시한 옛 총재실에 들어서니 시대별로 한국 경제를 호령했던 이들의 숨결이 느껴져 위압감마저 들었다. 이 공간은 1987년 신축 본관으로 이전하기 전까지 업무를 수행했던 총재들의 실제 집무실을 재현한 것이다. 금통위실에는 첫 통안증권 발행 회의 당시 배경을 재현한 각종 소품이 그대로 배치돼 있고, 1950년 6월 5일 최초의 금통위원회 회의 장면을 그대로 담은 기록화도 걸려 있다. 기록화 속의 등장인물들 사이에는 과거 금통위원으로 활동하던 때의 윤보선 전 대통령이 보여 흥미를 자아냈다. 사소한 소품일지라도 실제와 같은 모습으로 되살리고자 집중한 것은 새 기념홀이 갖는 의미와 깊은 연관이 있다는 설명이다. 한은의 역할이 화폐발행 외에도 다양하다는 사실을 일반 사람들에게 쉽고 재 미있게 알릴 만한 매개가 필요했다는 것이다.
심 반장은 "사진 자료를 수집하다 보니 한국은행의 과거 모습을 찍은 사진이 많지 않다는 점을 알게 됐다"며 "그만큼 일반인들이 접근하기 어려웠던 게 아니었나 하는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화폐박물관으로 쓰는 건물은 국가중요문화재(사적 제280호)로 지정됐을 만큼 역사적 의미를 지닌 건축물이지만 그 가치를 아는 사람보다 모르는 사람이 더 많다.
이 귀한 건물에는 그동안 두 번의 화재가 있었다. 심 반장은 "한 번은 1945년 조선은행 시절 1월에 났던 화재였고, 두 번째는 1950년 6월 12일 정식 설립 후 2주 만인 25일 6.25전쟁"이라며 "전쟁 후 1958년 1월 건물을 복구했다. 그 전에는 건너편 제일은행 건물에서 본점 생활을 했다"고 귀띔했다. 기념홀 건축실에 가면 이런 내용을 보다 깊이 있게 확인할 수 있다.
박물관 안에는 우리나라 최초로 설치된 엘리베이터도 아직 운영 중이다. 여러 차례 개.보수를 하긴 했지만 지하 금고와 바로 연결되는 엘리베이터라는 점에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 지난해 박물관을 다녀간 관람객은 23만명. 그럼에도 한국은행은 금융업, 은행과 관계없는 사람들에겐 여전히 낯설고 어려운 곳이다.
심 반장은 "새로 문을 여는 박물관 기념홀을 통해 사람들이 한국은행을 더 친근하게 생각해주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july20@fnnews.com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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