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일이던 지난해 12월 11일 오후 1시 20분께 서울 중랑구 묵동 한 주택 주차장에서 전화를 하는 유영순씨(47.가명·여)의 목소리가 떨렸다. 그의 손에는 1m짜리 수렵용 엽총이 쥐어 있었고 총구에선 흰 연기가 뿜어졌다. 바닥에는 탄피 3개가 떨어져 있었다. 유씨가 9개월 간의 복수극을 실행에 옮긴 직후였다. 맞은편에는 조경자씨(40.가명·여)가 허벅지 4곳에 관통상을 입은 채 바닥에 쓰러져 신음했다.
4일 서울중랑경찰서에 따르면 같은 산악회 회원이던 두 여인의 사소한 악연(?)은 지난해 3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회원 2300여명의 유명 산악회 회원이던 유씨와 조씨는 산악회 인터넷 카페에 게시된 거제도 망산 등산 계획을 보고 참석을 마음 먹었다. 유씨는 곧바로 버스 좌석을 예매했지만 이후 주변 지인에게 “망산 별거 없다”는 말을 듣고는 돌연 취소했다. 비슷한 때 조씨 역시 망산행 버스를 예매를 했는데 공교롭게도 유씨가 취소한 자리였다. 뒤늦게 마음을 바꾼 유씨가 버스 좌석을 예매할 때는 이미 꽉 찬 상태였다.
“감히 내 자리를 뺏어?” 유씨는 이전까지 일면식도 없었던 조씨에 대해 분노감이 생기기 시작했다. 그는 인터넷 카페에 “왜 내 자리를 탐하느냐”고 조씨를 비난했다. 그러나 조씨가 아무런 반응을 보이지 않자 유씨는 욕설을 하는 등 공격 수위가 심해졌다. 이를 보다 못한 산악회 운영진은 그에게 2개월 제재를 한 뒤 이후 영구제명했다.
유씨의 분노는 걷잡을 수 없었다. 산악회는 미혼인 유씨가 지난 6년간 애착을 보인 단체였기 때문이다. 더구나 산악회 2년차인 조씨가 자신을 밀어냈다는 오해까지 싹텄다.
이때부터 유씨는 “고통을 똑같이 돌려주겠다”며 철저한 복수를 기획했다. 자신보다 어리고 활달했던 조씨를 쉽게 제압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무기가 필요했다. 유씨는 ‘수렵용 엽총’이 적격이라고 판단했다. 수개월간 교육을 받은 유씨는 9월께 수렵면허와 총포 소지 허가를 취득했다. 이어 150만원 가량을 주고 엽총과 실탄 10발을 구입했다.
유씨는 11월 7일 산악회 뒤풀이가 있다는 사실을 접하고 조씨를 미행해 주거지를 알아냈다. 사건 당일인 지난달 11일 오전 6시 30분께 서울 양천경찰서 신정2지구대를 찾아 "충남 공주로 사냥을 간다"며 엽총을 건네받았다.
총을 받은 유씨는 방아쇠에 걸린 잠금장치를 전동 절단기로 끊고 공주가 아닌 조씨가 사는 중랑구 묵동으로 향했다. 유씨는 조씨 집에 주차된 자동차에서 그의 전화번호를 발견했다. 곧장 유씨는 조씨에게 전화를 걸어 "차를 좀 빼달라"고 말했다.
조씨는 아무런 의심 없이 터벅터벅 나왔고 유씨는 그대로 3차례 방아쇠를 당겼다. 한 발은 빗나갔지만 두발은 허벅지에 명중했다. 생전 처음 대면한 두 여인 간 인연이 비극으로 끝나는 순간이었다.
경찰 관계자는 “미혼인 유씨가 어머니 사망 이후 산악회 애정이 남달랐는데 영구제명을 당하자 조씨에 대한 분노가 커진 것으로 추정된다”며 “유씨는 죽일 목적이 아니었다고 말하지만 그의 행적을 보면 살인까지 계획한 것으로 판단했다”고 밝혔다.
다행히 현재 조씨 생명에는 지장이 없는 상태다. 그러나 경찰은 조씨가 사고 충격으로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등 후유증이 남아 고통받고 있다고 전했다.
integrity@fnnews.com 김규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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