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칼럼 특별기고

[세계 석학에 듣는다]EU, 포퓰리즘 딛고 살아남을까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1.13 17:34

수정 2017.01.13 17:38

[세계 석학에 듣는다]EU, 포퓰리즘 딛고 살아남을까

유럽연합(EU)의 생존이 위협받는 또 다른 한 해가 시작됐다. 희소식은 2016년 최대 분열요인이었던 영국의 EU 탈퇴 국민투표가 통제 가능해 보인다는 점이다. 나쁜 소식은 올해 프랑스와 이탈리아가 포퓰리스트 정치세력에 점령당할 위험에 직면했다는 것이다. 프랑스나 이탈리아 어느 곳에서건 우려가 현실이 된다면 EU의 종말이 예고될 수 있다.

EU는 최근 들어 포퓰리스트들의 주된 타깃이 됐다. 물론 모두가 EU 회원권이 희생할 가치가 있다고 믿지는 않는다.
그러나 인기 있는 EU 비판론에는 해낼 수 있다는 분위기가 감돈다. 이들은 EU가 무엇을 했는지, 특히 경제적 면에서 어땠는지 주로 초점을 맞춰왔다. 유로 위기로 가장 큰 타격을 입었거나 긴축에 직면해 있거나 아니면 더 최근에는 무역협정으로 뒤처졌다고 느끼는 나라들에서 EU 회의론이 가장 요란한 이유다.

그러나 이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우파 포퓰리즘은 경제가 탄탄한 (오스트리아 같은) 국가와 (헝가리, 폴란드 같은) EU 회원권 혜택이 손에 잡히는 국가들에서도 세력을 모으고 있다. 프랑스의 경우 EU는 어떤 긴축도 요구한 적이 없다. 심지어 장클로드 융커 EU 집행위원장은 "프랑스는 프랑스이기 때문에" EU 예산규정이 실제로 적용될 수 없다고 시인하기도 했다. 이제 포퓰리스트들은 EU가 하는 것보다 EU가 대표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우리는 누구인가."

오랫동안 스스로를 공통된 환경과 문화를 기반으로 설정해왔던 사회들이 지금은 다문화주의로 갈등하고 있다.

세력균형이 정체성의 정치학으로 이동하면서 민주주의 제도에 대한 태도 역시 바뀌고 있다. 포퓰리스트 지도자들은 '인민들'-자신들이 규정하는 인민-의 의지는 제도에 구속받아서는 안 된다는 가정에 따라 움직인다. 이는 자유민주주의의 근본적 전제, 즉 다수의 힘은 특히 소수, 선거제도 등을 보호하기 위해 제한돼야 한다는 점을 부정하는 것이다. 다수의 힘을 제한하는 전형은 미국인들이 말하는 '견제와 균형'에 있다. 사법의 독립, 정치시스템의 근본요소를 바꾸기 위해서는 절대다수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는 것 등이다.

그러나 포퓰리스트 정치인들은 이 같은 제약에 과민반응한다. 빅토르 오르반 헝가리 총리는 '비자유' 민주주의에 대한 자신의 선호를 공개적으로 드러낼 뿐만 아니라 정부의 권한에 대한 견제를 무력화하는 작업을 진행 중이다. 폴란드 포퓰리스트 정부도 사정이 다르지 않아 사실상 정부 수반인 야로슬라브 카친스키 전 총리는 행정부 내에 공식 직함조차 없다.

독립적 기관에 대한 그들의 무시를 감안할 때 왜 포퓰리스트들이 어떤 면에서 자유 민주주의의 정수인 EU를 반대하는지 이해하기가 어렵지는 않다. 포퓰리스트들에게 EU는 국내 견제보다 더 제압하기 힘든 버거운 제약을 뜻한다.

주류 정치인, 이보다 훨씬 적은 EU 관리들이 반EU 정서의 흐름을 되돌릴 수 있는 방법은 거의 없다. 일부 정치인은 대중의 압력에 굴복해 포퓰리스트들의 구호를-심지어 프로그램까지-차용하기도 한다.

문제가 EU의 행동에 대한 것이었을 때는 그나마 가능한 해결책이 있었다. 그러나 지금은 방법이 없다. EU는 견제와 균형이 발전에 방해물이 된다는, 또는 외국인이 유럽인의 생활방식을 위협한다는 인식을 받아들일 수 없다. EU는 또 포퓰리스트들이 지지를 이끌어내는 혁명적이고, 불가능한, 또는 비자유주의적 해결책 같은 것을 제공할 수도 없다. EU는 매력적이지 않지만 반드시 필요한 규정들과 절차들을 품은 채 자유 민주주의의 보루로 남아있어야 한다.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이런 다차원의 민주주의와 개방경제를 대변하는 둔한 체제로 포퓰리스트들의 매력적인 약속들과 경쟁할 수는 없다. 그러나 포퓰리스트들이 약속을 실천하는 데 실패하면 대중이 다시 몰려들 곳은 EU다.
유일한 희망은 그저 EU가 그때도 여전히 남아있기를 바라는 것이다.

대니얼 그로스 유럽정책연구원장
정리=dympna@fnnews.com 송경재 기자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