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왕실 향로의 우아한 자태
고려시대에 고급 청자향로는 일반인이 소장할 수 없는 기물이었다. 이는 고려왕실이 건립 초부터 예제개혁(禮制改革), 즉 선왕의 은덕을 구하고 후대에 복됨을 바라는 종묘제를 확립하며 향로를 왕권의 정당성을 상징하는 기물로 삼았기 때문이다. 일종의 상징일 뿐이지만 고대 중국 왕조인 하(夏), 상(商), 주(周) 삼대부터 전국시대에 이르기까지 당대의 왕권을 상징하는 데 빠질 수 없는 의기였기에 고려 역시 일반인은 물론 당시 귀족 또한 갖출 수 없도록 한 것이다.
기형은 상부의 구연 각 맞은편에 반원형 수직귀를 세우고 팽배한 몸통을 보이다가 반원 형태로 둥글게 처리한 후 세 개의 다리를 붙여 완성했다. 몸통에는 두 개의 층에 각각 문양을 새기고 배경에는 뇌문으로 양인각했는데 그 수법이 매우 섬세하고 화려해 조선시대의 자기에서는 보기 힘든 고도화된 장식성을 확인할 수 있다.
작품은 일제강점기 조선에서 와타나베라는 일본인이 수장하다가 1935년 경성구락부 미술경매회를 통해 또다시 일본인에게 판매된 비운의 자기(瓷器)다. 4년 후인 1939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조선공예전람회에 한 번 전시됐다가 자취를 감췄는데, 80년 가까운 세월 동안 한 일본인 소장가의 집안에 내려오다가 근래에 고국으로 돌아오게 됐다. 신비로운 비색을 갖춘 고려시대 왕실 기물이었으니 타국에서도 아낌을 받았겠지만 앞으로는 더 이상 부침이 없도록 주의해야 할 고려가 남긴 우리의 유산이다.
음정우 서울옥션 고미술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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