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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n스트리트] VX

구본영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2.26 17:05

수정 2017.02.26 17:05

말레이시아 정부가 25일 김정남의 사망 원인이 신경작용제인 VX 중독이라는 부검 결과를 확인했다. VX는 피부접촉의 경우 10㎎으로도 사람을 사망에 이르게 할 정도로 맹독물질이다.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이 인공으로 합성된 화합물 중 가장 강력한 독극물에 의해 피살된 셈이다.

말레이시아는 테러의 배후로 북한을 지목하고 단교까지 검토하고 있다. 그런데도 북한이 말레이시아 경찰의 수사 발표를 비난하며 오리발을 내밀고 있는 이유가 뭘까. 단지 제3국에서 반인륜적 범행을 저지른 데 따른 국제사회의 비판이 켕겨서만이 아닐 게다. 무엇보다 유엔이 사용을 금지한 화학무기인 VX를 사용함으로써 가뜩이나 외교적으로 고립된 북한이 '국제 왕따'가 될 가능성을 우려하고 있다고 봐야겠다.


우리가 우려와 함께 주시해야 할 대목은 VX가 대량살상용으로 악용될 가능성이다. 니컬러스 케이지가 주연한 할리우드 영화 '더록'에서 묘사된 VX의 위력을 보라. 자칫 한 도시의 시민 모두를 몰살시킬 수 있을 정도였다. 픽션이 아니라 실제로 1988년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이 방식으로 쿠르드족 수천명을 학살한 전례도 있다. 더구나 북한은 VX 등 25종의 화학작용제 2500t 이상을 보유한 세계 3위의 화학무기 강국이라고 하지 않나. VX를 탑재한 스커드미사일 한 발이 서울에 떨어지면 12만명이 살상 위기를 맞는다는 분석은 상상만 해도 끔찍하다.

일찍이 경제학자 케네스 볼딩은 "예전엔 대도시가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안전판이었지만, 현대에는 공중전과 핵무기로 인해 시민이 인질이 됐다"고 했다. 좁은 한반도에서, 도시에 몰려 살고 있는 우리가 핵과 화학무기라는 대량살상무기를 양 손에 든 김정은 정권의 인질이 되어버린 꼴이다.

세리 나스리 아지즈 말레이시아 문화관광부 장관이 엊그제 북한을 '깡패국가'라고 비판했다.
자국을 범행 무대로 삼고도 적반하장의 태도를 보이자 분노한 것이다. 뒷골목 건달 세계에서도 인질극은 최악의 범죄다.
한반도 문제의 당사자인 우리가 팔짱만 끼고 있을 게 아니라 북한 정권의 반문명적 행태를 국제사회에서 공론화할 때다.

kby777@fnnews.com 구본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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