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모두의 '제목 없는 걸작'
오색 단추들이 별이 되어 밤하늘을 장식하고, 소박한 꽃병이 그 우주 중간에 떠 있다. 반대편 화면에는 뾰족한 송곳으로 주문을 외듯 그어 내려갔을 것 같은 곡선이 소용돌이치듯 이어진다. 마치 아이의 그림일기 같은 이 작품은 고희를 훌쩍 넘긴 어느 대가의 '제목 없는 그림'이다.
이 작품은 추상과 반추상 사이를 넘나들며 어떠한 정의도 내려지지 않는 독보적 화풍으로 국내뿐 아니라 전 세계 화단에서 주목하고 있는 오세열 화백(72)의 2017년작 '언타이틀드(Untitled)'다. 그림은 감상하는 이의 눈과 마음으로 정의되고, 제목 역시 그에 따라 정해진다는 그의 철학을 대변하듯 오 화백의 모든 작품의 제목은 '무제'다.
작가는 초벌그림을 하지 않는다. 그 역시 끝을 모르기 때문이라고 한다. 오 화백은 "대개 (화가들은) 처음에 붓을 잡으며 작품 구상을 하고 결론까지 연상하며 작업을 하지만 나는 그런 적이 없다. 그래서 시작과 끝이 늘 다르다. 나도 내 작품의 끝을 모른다"고 말한다.
사람이 태어나 살아가는 일생이 그러하다. 삶과 마주하는 현실은 언제나 예행연습이 없고, 계획대로 되지 않는다. 끝도 알 수 없다. 오 화백의 작품은 마치 순수했던 어린 시절, 놀이터 모래 위에 무의식적으로 그리던 우리 모두의 '제목 없는 걸작'과 닮아있다. 해질녘 '걸작'을 남기고 집으로 돌아가던 그 꼬마들처럼 말이다. 모든 일에 의미와 동기부여를 해야만 하는 어른이 된 지금 이 작품에서 위로를 받게 되는 이유다. 7일부터 서울 한남동 갤러리조은에서 열리는 '오세열·김동유 사제전'에서 오 화백의 그림을 직접 감상할 수 있다.
조은주 전시기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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