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바로 美국가무역위원장, 한국기업 정조준
피터 나바로 미국 국가무역위원회(NTC) 위원장이 삼성과 LG가 불공정 무역행위를 하고 있다고 공개 비판했다. 나바로 위원장은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강경 보호무역정책을 주도하고 있다. 그가 공식 석상에서 국내 기업을 직접 언급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더욱이 신설된 대통령 직속 무역기구 수장이 직접 한국 기업의 불공정 무역행위를 지적했다는 점에서 파장이 예상된다.
6일(이하 현지시간) 미 의회방송 C-SPAN 등에 따르면 나바로 위원장은 이날 미국 워싱턴DC에서 전국기업경제협회(NABE) 주최로 열린 '2017 미국 경제정책 콘퍼런스' 연설에서 "삼성과 LG 등이 덤핑관세 부과 확정을 받은 후 관세 회피를 위해 중국에서 베트남과 태국으로 생산지를 옮겨 다니며 불공정 무역행위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번 발언은 미국 기업 월풀의 세탁기 피해를 언급하면서 나왔다. 미국이 최근 삼성전자와 LG전자가 중국 공장에서 만든 가정용 세탁기에 각각 52%와 32% 반덤핑관세를 부과하자 이들 두 업체가 중국이 아닌 베트남과 태국에서 생산한 물량을 중국에 수출, 관세를 의도적으로 피했다고 지적한 것이다.
나바로 위원장은 "이는 반드시 중단돼야 하는 무역 부정행위"라며 "이 같은 행위가 수천명의 미국인 실업자 행렬을 만들고, 월풀과 같은 회사에 수백만달러의 손실을 입힌다"고 강조했다. 초강경 보호무역주의자로 분류되는 나바로 위원장은 대선 당시 트럼프 캠프 경제정책의 큰 틀을 만든 사람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의 공격적인 발언으로 국내 기업의 입지가 크게 위축될 가능성도 있다. 한국의 지난해 대미 무역흑자는 277억달러(약 32조원)로, 미국의 전체 무역상대국 중 8위 수준이다. 대미흑자 규모는 미 재무부의 '환율조작국' 기준(대미 무역흑자 200억달러 이상)에 해당되기도 한다.
월스트리트저널(WSJ)에 따르면 이날 나바로 위원장은 "트럼프 정부 핵심 목표는 무역적자 감축"이라며 "중국과 독일 등 무역상대국으로 인해 잠재적인 경제·안보 위험이 커지고 있다"고 주장했다. 미국 제조업체 소유권을 외국인에게 양도했기 때문에 무역적자가 생겨나고 있으며, 안보까지 위협받고 있다는 것이다.
그는 "우리 기업과 기술, 식량 공급망을 사들이고 궁극적으로 방위산업을 통제하는 국가가 동맹국이 아니라고 가정해보라"며 "미국은 총성이 아니라 현금 장부조작으로 인해 '더 큰 냉전'에서 패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또 나바로 위원장은 독일과의 무역적자 문제도 집중적으로 거론했다.
그는 "독일은 미국이 다뤄야 할 가장 어려운 무역적자국"이라며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가 곧 미국을 방문하는데, 어떻게 양국 간 경제관계를 개선할 수 있을지 토론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나바로 위원장은 앞서 지난달 파이낸셜타임스(FT)와 인터뷰에서 독일이 유로화 가치를 큰 폭으로 절하해 미국과 유럽연합(EU) 회원국을 착취하고 있다고 주장한 바 있다. 메르켈 총리는 오는 14일 트럼프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할 예정이다.
또 나바로 위원장은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하는 문제에 대해 "중국은 통화가치 절하를 위해 공격적인 행동을 해 왔다"고 말했다. 그는 다음 달 미국 재무부가 환율보고서를 발표할 때 중국을 환율조작국으로 지정할지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bhoon@fnnews.com 이병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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