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과 새, 조형과 자연
1949년에 제작된 '독'은 신사실파 제2회전에 전시한 작품으로 당시 장욱진이 '독'을 포함, 유화 13점을 전시했는데 구도와 도상의 상징성으로 전시작품 중 가장 많은 주목을 받았다고 한다. 작품을 살펴보면 8호 크기의 화폭에 황색으로 메우고 전면에 항아리를 가득 차게 그려 넣은 것으로 좌측 상단의 여백엔 나무 한 그루를, 하단 중앙엔 새 한 마리를 배치했다. 이 외에 형태가 또렷하진 않지만 나무 뒤로 둥근 도상이 눈에 띄고, 항아리 하단 양쪽으로 둥근 선이 확인된다.
작가의 화면에는 선택된 소재들만 등장하는 편으로 보다 함축적 의미를 갖기 때문에 구성과 구도, 표현 방식에 따라 제작 의도를 해석해 볼 수 있다. 먼저 나무를 살펴보면 잎이 떨어져 앙상한 나뭇가지와 잎이 풍성한 나뭇가지가 한 나무에 대조적으로 표현되었고, 항아리는 항아리의 뚜껑이 닫혀 있다고 보기에는 뚜껑의 형체가 약하고 뚜껑이 없다고 보기에는 안쪽을 더 밝게 채색해 구분을 모호하게 했다.
장욱진의 작품에는 나무와 새가 주소재로 사용되는데, 이 소재들은 이 시기부터 등장해 작가의 말년까지 꾸준히 변모해왔다. 이 작품은 화가 장욱진이 동양의 감성과 기법을 서양의 물감으로 표현해내 한국 대표작가로 손꼽히는 것이 아니라, 자연대상물을 조형요소에 근간을 두면서 현대적으로 번안하고자 끊임없이 노력했기 때문에 새로운 화법을 이룰 수 있었음을 보여주는 귀한 초기 작품이기에 작가의 작업을 대표하는 작품이라고 할 수 있다.
이현희 서울옥션 스페셜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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