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기자수첩

[기자수첩] 경제 일선에 선 자들

김유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3.27 17:12

수정 2017.03.27 17:12

[기자수첩] 경제 일선에 선 자들

헌법재판소에서 박근혜 전 대통령의 탄핵안을 인용하던 날, 경제 원로 몇 사람에게 앞으로 '대한민국호'가 어떻게 방향키를 잡아야 할지 묻고자 전화를 걸었다. "장관님, 앞으로 2개월 남았는데요…."

말을 이으려 하는데 일흔을 넘은 원로의 불호령이 떨어졌다. "새 대통령 뽑는다고 대충 보내도 되는 2개월이 아니지. 2개월이 얼마나 중요한지 모릅니까?"

질문을 다 던지기도 전에 혼쭐부터 나니 당황스러웠다. 그렇지만 금세 수긍했다. 그의 불호령은 '단 하루도 허투루 보내선 안 된다'는 나라 걱정이었다. 이럴수록 경제 일선에 있는 자들의 '촉'이 예민해야 한다는 조언이었다.


경제부 기자의 일이란 게 그 '경제 일선'이라는 데 있는 자들을 많이 만나는 것이다.

'경제는 우리가 책임집니다.' '면밀하게 예의주시하고 있습니다.' 정부 관료나 중앙은행의 정책 결정권자들은 매일 입 모아 이렇게 외친다. 사실 보도자료 속 인용구를 통해서만 이들을 만난다면 한국 경제엔 걱정 거리가 별로 없다.

실제로 이들과 만나며 받는 느낌은 조금 다르다. 책임진다고 하는데, 책임지게 해도 되나 싶은 순간이 많이 있다.

"가계 부채 늘었죠. 그런데 국내총생산(GDP)도 늘고 있으니까 걱정할 것 없어요." 얼마 전 오찬 자리에서 한 경제 기관의 간부가 한 이야기다. 귀를 의심했다. "정 안 되면 국가 채무로 개인 빚을 탕감해주는 방법도 있다"고 말하는 사람도 봤다.

그는 친절하게 "우리나라 국가 채무 수준이 다른 나라보다 나쁘지 않다"는 부연설명도 했다. 국민들이 빚 때문에 죽겠다고 하니, 기꺼이 나라가 살려줄 수 있다는 것이다.

'나랏돈은 내 돈 아니니까'라는 이기주의가 보였다. 나랏일에 앞장만 서느라 뒷줄에 선 사람들 말은 들은 적 없다는 것인가.

물론 맨 앞줄의 모든 자들이 이런 안일함으로 허송세월하진 않을 것이다. 새 대통령이 결정되기 전까진 어쩔 수 없이 내려놓아야만 하는 일들도 많이 있는 걸로 안다. 최근엔 다른 나라와 전처럼 대화가 잘 안 되는 답답함도 커졌다.


그렇다한들 무딘 촉을 들고 선 장수를 어떻게 신뢰할까. 촉은 예민한데, 엉뚱한 곳을 찔러대는 것도 위험해 보인다. 남의 손에 맡길 수밖에 없는 입장이어선지 더욱 불안하다.
여러가지로 아찔한 가운데 2개월이 흐르고 있다.

july20@fnnews.com 김유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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