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전 대통령은 영장실질심사에서 구속의 부당성을 항변했다. 특히 "내 통장을 확인해 보라"며 뇌물 혐의 등을 적극 부인했다고 한다. 하지만 강부영 영장전담판사는 "주요 혐의가 소명되고 증거인멸의 염려가 있다"며 영장 발부 이유를 밝혔다. 유무죄는 법정에서 가려야 하겠지만, 법원의 이번 판단 자체는 존중돼야 한다. 법 앞에 평등이야말로 법치주의의 대원칙이 아닌가. 전직 국가원수라고 예외일 순 없다. 박 전 대통령의 탄핵을 반대하는 이들도 이제 이를 승복해야 한다.
다만 박 전 대통령이 최순실 스캔들이 불거진 이후에라도 잘 대처했으면 하는 아쉬움은 남는다. 검찰과 특검 조사나 헌법재판소 탄핵심판에 출석해 방어권을 행사했으면 사태가 이 지경에는 이르지 않았을 법하다. 청와대 안종범 전 정책조정수석, 정호성 비서관 등 공범으로 몰린 피의자들의 허물에 대해 최소한 도의적 책임을 통감하고 국민에게 사과하는 자세를 보여줬어야 했다. 이제부터라도 박 대통령 측은 탄핵을 반대해 태극기를 든 지지세력에 기대려 하지 말고 검찰도 일체의 정치적 고려를 떠나 쌍방이 오로지 법리로만 다퉈야 할 것이다.
최순실씨가 국정을 사유화할 텃밭을 제공한 장본인이 박 전 대통령이라면 수의를 입게 된 것도 그의 자업자득일 게다. 하지만 국격을 떨어뜨리는 이런 사태가 재발돼선 곤란하다. 대통령이 임기 초에 독주하다 임기 말에 나락으로 떨어지는 패턴을 막으려면 사정기관 전반에 걸친 대수술로 국가운영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예컨대 검찰부터 이번에 보여준 법불아귀(법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는다)의 자세를 '죽은 권력'이 아닌, '살아 있는 권력'에도 보여주도록 개혁해야 한다. 정치권이 5.9 대선에서 뽑힐 다음 대통령 임기 중에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줄일 수 있는 분권형 개헌에 대한 합의도 이뤄내기를 당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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