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미국산 제품 사고 미국인 고용하라" 美 우선주의 선포

서혜진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4.19 17:37

수정 2017.04.19 22:10

트럼프, 행정명령에 서명.. 전문직 취업비자 요건 강화
주요산업 큰 파장 일듯.. 국내 철강 수출 차질 우려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위스콘신주 케노샤에 있는 제조업체 스냅온 본사를 방문, 고급기술을 보유한 외국 인력의 미국 취업을 어렵게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들어 보이고 있다. 이 행정명령에는 연방정부가 물품을 조달하거나 관급공사를 할 때 미국산 제품 구매를 확대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AP연합뉴스
18일(현지시간)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오른쪽)이 위스콘신주 케노샤에 있는 제조업체 스냅온 본사를 방문, 고급기술을 보유한 외국 인력의 미국 취업을 어렵게 하는 행정명령에 서명한 뒤 들어 보이고 있다. 이 행정명령에는 연방정부가 물품을 조달하거나 관급공사를 할 때 미국산 제품 구매를 확대하도록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AP연합뉴스

【 로스앤젤레스.서울=서혜진 특파원 김경수 기자】 "미국산 제품을 사고, 미국인을 고용하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18일 이 같은 내용을 골자로 한 행정명령에 서명하면서 미국 정보기술(IT).철강.건설 등 주요 산업에 파장이 예고되고 있다.

블룸버그통신과 뉴욕타임스(NYT) 등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미 중서부 위스콘신주 케노샤에 있는 공구 제조업체 스냅온 본사를 방문한 자리에서 전문직 취업비자(H1-B) 발급요건을 강화한 내용의 '바이 아메리칸-하이어 아메리칸(Buy American-Hire American)'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행정명령은 연방 정부기관이 물품을 조달하거나 관급공사를 할 경우 국산품 구매를 늘릴 수 있도록 관계기관들이 종합적 평가를 실시하도록 했다. 또한 연방펀드의 지원을 받는 프로젝트에는 미국산 철강을 사용하도록 했다.

이와 함께 지금까지 무작위 추첨방식으로 이뤄진 H-1B 비자의 오남용을 막기 위해 가장 기술력이 뛰어나고 가장 임금이 높은 외국 인력에게 우선 발급하도록 했다. 비자 수수료 인상과 IT산업의 실제 임금 수준을 반영한 임금표 조정, 법 위반행위에 대한 광범위한 단속 등의 내용도 포함됐다.

■"미국 노동자와 학생 보호"

트럼프 대통령은 이날 행정명령 서명에 앞서 행한 연설에서 "내가 서명하는 이 행정명령은 당신과 같은 노동자와 학생들을 보호할 것"이라며 "이것이 미국 우선주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미국 제품을 사고, 미국민을 고용하겠다는 약속을 지키기 위해 강력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말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번 행정명령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이민규정과 건강보험법 개정 등에서 한 초기 실패로 취임 이후 가시적인 성과를 내지 못한 부분을 경제분야에서 만회하려는 조치로 해석하고 있다.

그러나 반이민 행정명령과 현행 건강보험법(오바마케어)의 폐기 시도가 잇달아 좌초한 것처럼 이번 행정명령 역시 제동이 걸릴 가능성도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또 만약 절차적 문제 없이 행정명령이 시행된다 해도 트럼프 대통령이 의도한 효과를 낼 수 있을지에도 미국 언론은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특히 이번 행정명령이 주로 미국 내 철강 제조업체와 건설업체에 혜택을 주는 데 초점을 맞췄지만 철강 등 원자재비용과 건설비용, 고용비용 등을 상승시켜 오히려 악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고든 존슨 액시온캐피털매니지먼트 애널리스트는 이날 투자자들에게 보낸 노트에서 "트럼프의 '미국인을 고용하라'라는 이니셔티브가 미국에서 철강 생산비용을 상승시켜 미국 내 공장들에 역풍을 가져올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이번 행정명령으로 원자재 가격이 상승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공약한 '1조달러 인프라 투자계획'에 차질이 생길 것이라는 지적도 있다.

■철강.구리 등 가격 급등 우려

업계에서는 행정명령이 실행될 경우 건설자재 가격이 뛰면서 석유 파이프라인과 고속도로, 교량, 주택, 학교 건설 등 인프라비용이 증가할 것이라고 예상하고 있다. 켄 시몬스 미국 일반건설협회 수석이코노미스트는 건설업계가 이미 건설 핵심자재인 디젤, 철강, 구리, 고무 등에 가격상승 부담을 지고 있는 상황에서 추가 가격상승이 이어질 경우 건설 프로젝트들이 지연 또는 취소될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미 통계청에 따르면 최근 12개월 동안 철강은 19%, 구리 17%, 석고보드 7.6%, 고무와 베니어판 가격은 7.3% 올랐다.

한편 국내 산업계도 이번 행정명령의 파장을 예의 주시하고 있다. 철강·건설 업체들의 미국 수출에 차질이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간 포스코 등 국내 철강업체들은 미국으로 수출되는 한국산 철강에 대한 과도한 반덤핑관세 등의 조치가 현실화될 경우 세계무역기구(WTO) 제소 등을 검토해왔다. 다만 미국 정부의 조치가 현실화될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는 입장을 보이고 있다. 지난 1월 말에도 송유관에 대해 행정명령 사례가 있었으나 현실화되진 않았다는 것이다.

미국 현지생산 체제를 갖춘 일부 국내 철강업체는 트럼프 정부의 통상압박에 다소 여유가 있다. 지난해 미국 현지공장 2곳을 인수한 세아제강은 최근 미국 정부가 한국산 유정용 강관(OCTB)에 대해 내린 반덤핑 최종 판정 보복에서 비켜났다. 미국 정부가 세아제강을 제외한 다른 한국 업체들에 반덤핑 마진율을 올리면서 희비가 엇갈렸다.

포스코는 자체적으로 통상전문가를 양성하고 미국 현지 통상사무소 개소했다.
워싱턴 주변 로펌과 계약을 해서 상시 대응에 나서기로 했다. 아울러 미국 현지 철강업체들과 협력도 강화한다.
권오준 포스코 회장은 "US스틸 같은 미국 현지 철강업체와 협력하는 것이 통상압력을 낮추는 데 중요하다"면서 "현지 철강업체 경영진과 관계를 돈독히 하고 필요하면 현지 자본투자도 해 적극적으로 협력해나갈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sjmary@fnnews.com

fnSurve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