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그것을 알려주마] 횡단보도 녹색불 '깜박 깜박', 건너도 될까?

용환오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5.28 09:00

수정 2017.05.28 09:00

횡단보도에 보행신호(녹색등)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횡단보도에 보행신호(녹색등)이 들어오자 사람들이 길을 건너고 있다.
"왜 이리 녹색 신호가 짧지?"
"건너 말아?"

서울에는 3만3684개의 횡단보도가 있습니다. 서울시의 총 거리는 8214km(도로연장)로 단순 계산해보면 1km 당 횡단보도의 수는 4.10개입니다.(2016년 기준)

일 평균 5km를 걷는다고 가정하면 서울시민은 하루 20.5개의 횡단보도를 만나는 셈이죠.

매일 수십번을 만나지만 무심코 지나쳤던 횡단보도에 대한 궁금증을 살펴보았습니다.

■ 왜 모든 횡단보도에 신호등이 없을까?

보행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선 신호를 기다리지 않고 바로 건널 수 있는 장점이 있지만 운전자와의 눈치싸움에 밀려 자동차 행렬이 끝날 때까지 기다리는 경우도 부지기수입니다.


보행신호가 없다보니 때로는 보호받지 못한다는 생각이 들기도 하죠.

보행신호등은 모든 횡단보도에 설치되지 않고 아래와 같이 일정 조건을 충족할 때 설치됩니다.(도로교통법시행규칙 제 7조 제 1항 별표 3)

- 1일중 횡단보도의 통행량이 가장 많은 1시간동안의 횡단보행자가 150명을 넘는 곳.

- 번화가의 교차로, 역 앞 등의 횡단보도로서 보행자의 통행이 빈번한 곳.

- 차량신호만으로는 보행자에게 언제 통행권이 있는지 분별하기 어려운 경우.

- 차도의 폭이 16미터 이상인 교차로 또는 횡단보도에서 차량신호가 변하더라도 보행자가 차도 내에 남을 때가 많을 경우.

- 어린이 보호구역등 내 초등하교 또는 유치원 등의 주 출입문과 가장 가까운 거리에 위치한 횡단보도.

■ 횡단보도 보행시간은 어떻게 정해질까?

일반적으로 보행자 녹색신호는 도로의 폭에 따라서 달라집니다. 도로의 폭이 넓을수록 보행자 녹색시간이 늘어난다고 볼 수 있습니다.

보행자 녹색 신호 시간은 다음과 같이 정해집니다.

보행자가 횡단보도를 건널 때 신호시간은 '보행진입시간 + 횡단보도 1m당 1초'를 원칙으로 합니다. 예외적으로 어린이와 노인, 장애인 등 교통약자나 유동인구가 많아 보행밀도가 높은 지역은 ‘보행진입시간 + 0.8m당 1초’를 적용합니다.

보행진입시간은 보통 7초이며, 필요시 4~7초로 변경이 가능합니다.

길이 32m 횡단보도를 예로 들면, 보행진입시간(7초), 횡단보도 길이(32m)로 39초 동안 횡단보도 녹색 신호가 유지됩니다. 교통약자나 유동인구가 많은 곳은 보행진입시간(7초)에 보행약자 신호시간 산정기준(32÷0.8)로 47초까지 연장됩니다.

녹색등이 깜박이는 시점은 언제일까요? 4~7초의 녹색신호(보행진입시간) 후 점멸신호로 바뀝니다. 길이 32m 횡단보도라면 7초간 녹색불이 들어온 후 30초간 깜박이는 것이죠.

또한, 차량 신호등이 적색등으로 바뀌는 동시에 보행자 녹색불로 바뀌는 것이 아니라 2~3초 정도 후 녹색등으로 바뀌어 사고를 예방하고 있습니다.

■ 횡단보도 녹색등 '깜박 깜박', 건너도 될까?
보행등 잔여시간표시장치. 녹색불 잔여시간을 숫자나 도형으로 알려준다.
보행등 잔여시간표시장치. 녹색불 잔여시간을 숫자나 도형으로 알려준다.

횡단보도를 건널 때 빠지게 되는 딜레마. 바로 녹색등이 깜박일 때입니다.

'보행등 잔여시간표시장치'가 함께 설치됐다면 보통 보행자들은 점멸중이더라도 시간을 판단하여 횡단여부를 결정하게 됩니다. '잔여시간표시장치'가 없다면 건너야 할지 많은 생각을 하게 되죠.

그러나 법에서 녹색등화의 점멸의 의미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도로교통법 시행규칙 제 6조 제 2항 별표 2엔 '보행자는 횡단을 시작하여서는 안 되고, 횡단하고 있는 보행자는 신속하게 횡단을 완료하거나 그 횡단을 중지하고 보도로 되돌아와야 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녹색불이 깜박이고 있다면 횡단을 시작조차 하지 말고 건너지 못할 것 같다면 되돌아오란 이야기입니다.

그렇다면 녹색등이 깜박일 때 횡단보도를 건너다 사고가 난다면 보행자의 책임은 어떻게 될까요?

녹색등 점멸 중 보행자가 차에 치였다면 운전자에게 전적으로 책임이 있다는 대법원 판결이 있습니다.(2007도9598 판결)

이 사건은 택시기사 A씨가 교차로에서 우회전해 횡단보도를 통과하다가 녹색등 점멸신호를 보고 횡단보도를 뛰어 건너던 피해자 B를 치는 사고였습니다.

대법원 재판부는 "보행신호등의 녹색등 점멸신호 전에 횡단을 시작하였는지 여부를 가리지 아니하고 보행신호등의 녹색등화가 점멸하고 있는 동안에 횡단보도를 통행하는 모든 보행자는 횡단보도에서의 보행자보호의무의 대상이 된다"고 말했습니다. 즉 녹색등이 깜박일 때 보행을 시작했더라도 사고가 났을 경우 운전자가 책임을 져야 한다는 것이죠.

반면, 보행자가 일부 책임을 지게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깜박이는 동안 횡단보도를 건너다 빨간불로 바뀐 뒤 사고가 난 경우입니다.(2001도2939 판결)

피해자 C씨는 보행신호 녹색등이 점멸되고 있는 상태에서 횡단보도를 횡단하기 시작해 다 건너기 전 보행신호가 적색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러자 C씨 손을 들고 계속 건너갔습니다. 그 사이 차량신호가 녹색으로 바뀌었고 직진하던 운전자 D씨 차량과 보행자가 부딪쳐 사고가 났습니다.


당시 대법원 재판부는 "피해자는 신호기가 설치된 횡단보도에서 녹색등의 점멸 신호에 위반해 횡단보도를 통행하고 있었던 것이어서 횡단보도를 통행중인 보행자라고 보기는 어렵다"며 피해자에게도 일부 과실을 인정했습니다.

신호등이 설치된 횡단보도의 경우 신호를 따르지 않는다면 횡단보도 보행자로 보호받지 못하고 오히려 신호 및 지시를 위반한 범칙행위에 해당하게 됩니다.


보행신호등의 지시에 따라 무리하게 건너지 않는 것이 안전한 보행 습관일 것 같습니다.

yongyong@fnnews.com 용환오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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