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국제일반

"통화가치 하락, 선진국 경제엔 득보다 실"

송경재 기자
파이낸셜뉴스

애덤 포슨, 영국 예로 들며 전통적 경제학 이론 반기
환율 하락으로 수출 늘지만 부품 수입으로 수입액 증가

"통화가치 하락, 선진국 경제엔 득보다 실"

통화가치 하락이 수출을 끌어올리고, 무역수지 흑자를 불러 경제성장에 보탬이 된다는 전통적인 경제학 이론이 적어도 선진국에서는 점점 틀린 이론이 돼 가고 있다고 월스트리트저널(WSJ)이 11일(현지시간) 보도했다.

WSJ은 분석기사에서 영국의 흐름이 대표적인 시범 케이스가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국제통화기금(IMF) 등은 여전히 일부 조건을 전제로 통화가치 하락과 경제성장 간에 강력한 상관관계가 있다고 강조하고 있지만 많은 전문가들과 현실이 다른 얘기를 하고 있다는 것이다.

■ 제조업 해외 이전이 배경

선진국을 포함해 상당수 공업화된 국가들이 부품이나 소재 등 제조업 부문 상당분을 임금이 싼 해외로 이전한 것이 경제학 이론을 뒤흔든 배경으로 지목된다. 말하자면 세계화가 통화가치 하락의 역설을 부른 셈이다.

영국이 대표적이다. 이전에는 파운드 가치 하락이 수출확대, 수입억제로 이어지면서 무역수지를 개선시켰고, 국내총생산(GDP) 성장률도 끌어올렸지만 지금은 다르다.

파운드가 하락하면 수출이 늘기는 하지만 수출품에 쓰이는 소재나 부품을 대부분 해외에서 수입하기 때문에 무역수지가 개선되기 어려운 구조다. 피터슨 국제경제연구소(PIIE) 소장이자 2009~2012년 영국은행(BOE) 통화정책위원을 지낸 애덤 포즌은 환율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세월이 흐르면서 점점 퇴색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포즌 소장은 2008년 세계 금융위기 뒤 파운드가 급격히 하락했지만(환율은 상승) 수출은 '기대했던 것만큼' 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달라진 흐름

과거에는 통화가치 하락이 수출을 끌어올리고 경제성장도 부추겼다. 1992년 영국이 당시 유로 전신인 유럽환율메커니즘(EERM)이 요구하는 수준으로 파운드 강세를 맞추지 못하면서 탈락하자 파운드는 9월부터 연말까지 넉달동안 11% 가까이 급락했다. 이때는 경제학 교과서 같은 움직임이 이어졌다.

파운드가 급락하면서 가격 경쟁력이 높아진 영국 수출품들의 수요가 확대됐고, 수출이 늘면서 무역적자는 이후 5년간 흑자로 전환됐다. 경제도 성장을 회복했다.

그러나 지금은 달라졌다. 2007~2010년 파운드가 주요 통화대비 25% 가까이 폭락하자 영국 정부는 희망을 나타냈다. 2012년 당시 재무장관이던 조지 오스본은 그해 4990억파운드였던 영국의 수출이 2020년에는 1조달러에 이를 것이라며 수출목표를 상향조정했다. 하지만 기대는 물거품이 됐다. 지난해 말 수출이 늘기는 했지만 5470억파운드에 그쳤다.

세계은행(WB),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제결제은행(BIS) 등은 최근 보고서에서 일부 선진국의 경우 환율움직임이 수출에 미치는 영향이 감퇴됐다고 밝혔다.

OECD는 보고서에서 2008년 파운드, 2012년 일본 엔이 달러 대비 가치가 하락했지만 교역에는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평가했다. 보고서는 기업들이 점점 더 글로벌 공급망에 의존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면서 1995~2011년 수출완성품을 만들기 위한 OECD 회원국끼리의 부품, 소재 등 수입은 14.9%에서 24.3%로 증가했다고 설명했다.

'중앙은행의 중앙은행'으로 부르는 BIS도 지난달 보고서에서 심화된 글로벌 공급망을 감안하지 않으면 표준적인 유효실질환율 같은 환율모델들은 "점점 더 시대에 뒤떨어진 것이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송경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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