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도 이제 정규직 되는 거니?"
한 국립박물관에서 계약직 연구원으로 일하는 A씨는 요즘 부쩍 주변에서 이런 말을 많이 듣는다. 자식을 석사까지 시켜놓았지만 비정규직에 머무는 모습을 보고 안타까워 하는 A씨 부모도 이 같은 질문을 한다고 한다. 최근 문재인 정부가 공공기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를 추진 중이라는 소식 때문이다.
박물관에서 근무 중인 계약직 연구원들이 제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다만 이들이 당장 요구하는 것은 비정규직의 정규직화가 아니다.
■저임금에 경력 인정 못 받아.. 도록서도 제외
19일 관련 업계에 따르면 박물관에서 계약직으로 일하는 연구원들은 석사 학위에도 월급 100만~150만원을 받는다. 국립박물관은 150만원, 공립박물관 110만원, 사립박물관 100만원 가량의 월급을 연구원들에게 지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2년 계약직인 이들은 성과가 뛰어나도 정규직 전환 경우는 없다시피하다는 전언이다. 한 연구원은 “우리는 계약기간 2년이 채 되기도 전에 다른 직장을 생각해야 해 상상 이상으로 고통스럽다”며 “정규직과 비슷하게 일하지만 받는 월급은 정규직에 한참 못 미치고 120만~150만원대 월급으로는 식비마저 부담이 돼 편의점에서 한끼를 간단히 떼우거나 도시락을 싸오곤 한다”고 털어놨다.
이들이 정규직이 되기 위해서는 학예사 시험에 응시, 합격하는 수 밖에 없다. 문제는 학예사 채용 공고 자체가 워낙 적은데다 일정도 불규칙하다는 점이다. 기존 임기제 학예사 재계약을 위한 형식적 채용 공고 등 채용 과정도 다소 불투명하다는 주장이다.
연구원 경력이 있다 해도 정규직인 학예사 시험에 응시하는 데는 별다른 이점이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학예사와 함께 각종 전시회를 기획하는데도 경력을 인정받지 못한다는 것이다. 도록에는 학예사 이름만 있을 뿐, 연구원 이름은 찾아볼 수 없는 경우도 많다.
계약기간 2년이 만료된 뒤 다른 박물관에서 다시 연구원으로 활동해도 이전 경력은 연봉에 반영되지 않고 있다. 이마저 나이가 많아지면 연구원 재취업도 어렵다는 설명이다.
■직원 절반이 비정규직..“정부 로드맵 지켜봐야”
국가가 직접 운영하는 국립박물관만 해도 기간제 근로자가 전체 직원의 절반 수준에 이른다. 문화체육관광부에 따르면 기간제 근로자 비율이 중앙박물관은 약 39%, 민속박물관 51%, 역사박물관 51%, 한글박물관 52%에 달한다. 무기계약직까지 정규직으로 감안한 것이지만 사실상 박물관 직원 2명 중 1명이 비정규직인 셈이다. 질 좋은 일자리를 만들고 감시해야 하는 국가기관이 오히려 비정규직을 양산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문재인 정부는 공공부문 뿐만 아니라 민간 기업까지 아우르는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로드맵’을 8월에 내놓을 예정이다. 문체부와 국립중앙박물관은 정부 로드맵이 나오는대로 박물관 운영 정책에 이를 반영한다는 입장이다.
문체부 관계자는 “비정규직 문제는 박물관만이 아니라 모든 기관의 문제인만큼 정부 로드맵에 따라 계획을 수립할 것"이라며 “채용은 박물관 수요에 맞춰 진행하는 것인데 이 과정에서 다양한 문제가 생긴 것 같고 채용시 가산점 반영 여부 역시 박물관 소관이어서 좀 더 검토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국립중앙박물관 관계자 역시 “구체적인 로드맵이 나오지 않아 아직 뭐라고 말하기는 어렵지만 향후 정부 정책에 따라 움직일 것”이라고 전했다.
|
solidkjy@fnnews.com 구자윤 기자
※ 저작권자 ⓒ 파이낸셜뉴스, 무단전재-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