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사회일반

6.25 전쟁 참전경찰 6만명 중 1만명 전사, 국가 위해 산화한 그들이 있었기에..

박준형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6.23 17:11

수정 2017.06.23 17:11

춘천.양구 전투 조관묵 경감, 30여명으로 4000여명 맞서 지역민 대피시키고 전사
내평지 전투 노종해 경감, 지서장으로 15명 이끌고 1만명 인민군과 1시간 교전
당시 시·도 경찰국 단위로 전투경찰대 편성해 참전 전투와 치안활동 등 펼쳐
조관묵 경감
조관묵 경감

노종해 경감
노종해 경감

1950년 11월 강원도 춘천.양구 지역에서 퇴각하던 북한 인민군들의 무차별 습격이 이어졌다. 당시 전투경찰대를 이끌고 전선을 지키던 조관묵 경위는 30여명의 대원을 이끌고 적군 4000여명에 맞섰다. 조 경위와 대원들의 살신성인 덕분에 지역민들은 무사히 대피할 수 있었지만 조 경위는 끝내 적군의 총탄을 맞고 장렬히 전사했다. 그의 나이 23세에 불과했다. 전쟁이 끝난 후 조 경위는 경감으로 1계급 특진 추서됐다.

■주민들 피신시키고 전사한 조관묵 경감

23일 경찰청에 따르면 고(故) 조관묵 경감은 1948년 2월 순경으로 임용되면서 처음 경찰 제복을 입었다.
강원 춘천경찰서에서 근무하던 1950년 6월 25일 북한이 남침했고, 조 경감은 양구파견대 중대장을 맡으면서 전쟁의 소용돌이에 휘말리게 됐다.

적의 공세에 밀리던 아군은 9월 15일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를 역전시켰고, 9월 28일 서울과 함께 춘천이 동시에 수복됐다. 인민군은 후퇴하면서 주요 인사와 민간인들을 체포하고 학살했다.

30여명의 대원과 함께 양구 지역 치안을 담당하던 조 경감 역시 11월 3일 인민군 패잔병들의 습격을 받았다. 그는 인민군 제10사단 병력 4000여명과 대치하며 양구군청 소재지를 고수했으나 조금씩 밀리면서 춘성군 북산면 내평리까지 후퇴했다.

당시 현장에는 지역민 2000여명이 있던 상황. 조 경감은 이들을 후방으로 안전하게 대피시킨 뒤 전열을 가다듬어 반격을 시도했다. 도로를 우회 차단한 적의 배면 공격으로 통신이 두절되는 등 맹공격을 받으면서도 그는 최후까지 용전분투했다.

하지만 수적으로 열세였다. 적의 파상공세는 더욱 거세졌고, 결국 그는 다음날 오전 7시께 양구읍 학조리 야산에서 총격전을 벌이던 중 적의 총탄에 복부 관통상을 입고 목숨을 잃었다.

■내평지서 전투에서 산화한 노종해 경감

고(故) 노종해 경감은 조 경감 이전에 양구 전선을 지킨 또 한 명의 6.25 참전 경찰관이다. 인민군은 6월 25일 서울을 점령한 뒤 국군의 퇴로를 차단하기 위해 26일 춘천으로 진격했다. 춘천 시내로 진입하기 위해서는 화천에서 춘천으로 가는 46번도로 내평리 마을 한복판에 위치한 내평지서를 반드시 통과해야 했다. 내평지서에는 지서장인 당시 노종해 경위를 포함해 경찰관 12명과 대한청년단원 3명이 있었다.

적의 진격에 노 경위는 대원들을 이끌고 도로변에 진지를 구축했다. 통신마저 끊기고 고립됐지만 노 경위 등 15명은 죽음을 각오하고 1만명이 넘는 인민군과 1시간 이상 치열한 교전을 벌였다. 인민군은 82㎜ 박격포를 동원해 내평지서를 완전 폐허로 만든 후에야 점령할 수 있었다.

노 경위 등은 결사항전 끝에 전원 산화했다. 당시 그의 나이 28세였다. 이들의 숭고한 희생 덕에 인민군의 춘천 진격은 1시간 이상 저지됐고 국군은 소양강 방어선을 구축해 북한의 계획을 수포로 만들 수 있었다. 이는 결국 6.25전쟁 첫 승리를 안긴 춘천지구 전투의 초석이 됐다. 전사 후 노 경위는 경감으로 1계급 특진 추서됐다.

■전투경찰대 활약…참전경찰 6만명 중 1만명 전사

조 경감과 노 경감을 포함해 6.25전쟁에 참전한 경찰은 총 6만3427명으로 추산된다. 3년1개월 동안 이어진 전쟁으로 실종자를 포함해 전사한 경찰이 9091명, 부상자는 6168명에 달한다.

참전유공자예우에관한법률이 6.25전쟁의 범주로 규정하고 있는 제주 4.3사건과 여순반란사건, 공비토벌 등에서 희생된 경찰까지 포함하면 6.25전쟁 관련 경찰 전사상자는 1만7844명으로 늘어난다.

경찰은 당시 각 시·도 경찰국 단위로 전투경찰대를 편성하고 전쟁에 참여했다. 전국 곳곳에 병력을 투입, 전투와 치안활동을 펼쳤다. 군경 합동작전 수행, 피난민 구호조치, 중요시설 경비 등이 경찰의 주요 임무였다.


이에 참전군인뿐만 아니라 참전경찰의 희생과 헌신도 잊지 않고 기려야 한다는 의견이 나온다. 전쟁기념관은 특별한 공훈을 남긴 군인이나 경찰 등을 호국인물로 선정하고 있지만 전체 호국인물 319명 중 경찰 출신은 10명에 불과하다.


경찰 관계자는 "6.25전쟁 당시 우리 국군과 학도병이 힘을 모아 대한민국을 위해 싸우고 희생한 것처럼 경찰 또한 전장으로 나가 나라를 지킨 사실을 잊고 지나가서는 안될 것"이라며 "대한민국을 지키고 구해낸 그들의 숭고한 희생을 잊지 않았으면 하는 바람"이라고 당부했다. jun@fnnews.com 박준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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