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칼럼 이구순의 느린걸음

[이구순의 느린 걸음] ‘황금알 거위’가 알을 낳는 법

이구순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7.20 17:10

수정 2017.07.20 17:10

[이구순의 느린 걸음] ‘황금알 거위’가 알을 낳는 법

초등학교(사실은 국민학교) 1학년이 막 시작된 어느 날 선생님이 '황금알 낳는 거위' 얘기를 들려주고는 부모님께 우화의 교훈을 들어오라는 숙제를 냈다. 엄마에게 선생님 얘기를 전하고 교훈이 뭐냐고 물었더니 "황금은 거위 뱃속에 있는 게 아니네. 거위가 살아있어야 황금알이 만들어지는 거네" 했다.

물론 다음 날 엄마에게 들은 얘기를 발표했다가 창피만 당했다. 선생님이 원하는 정답이 아니었으니….

그래도 나는 초등학교 1학년 시절 황금알 낳는 거위의 비밀을 배운 셈이다.

통신요금 인하 공방이 좀체 가라앉을 기미가 없다. 정부는 기업과 협의 없이 일정대로 요금인하 정책을 밀어붙이겠다고 나서고, 통신회사들은 경영부담과 주주에 대한 배임 걱정에 행정소송이라는 극단의 수단까지 검토한다고 한다.


그랬더니 정부는 통신회사들이 대통령의 공약에 정면으로 맞서보겠다는 것이냐며 으름장을 놓고 있고, 통신회사들은 공약대로 하면 당장 적자기업이 될 수밖에 없다고 아우성이다. 통 풀릴 기미가 없다.

정부는 통신산업이라는 거위를 키웠다. 전국에 통신망을 깔 수 있도록 허가를 내주고 주파수도 줬다. 그랬더니 세계 최대 휴대폰 업체가 한국에서 생겨났다. 세계 최고의 정보통신기술(ICT) 국가라는 명예도 얻었다. 이제 정부는 국민의 통신복지라는 알도 하나 더 내놓으라고 다그치고 있다.

그런데 거위는 한번에 서너 개씩 황금알을 낳지는 못한다.

주인은 거위가 괘씸하다. 그동안 줬던 먹이가 얼만데 알을 하나씩밖에 못 낳느냐고 생각한다. 게다가 알 더 낳으랬더니 꽥꽥거리며 소리까지 지른다. 이제 주인은 거위를 잡아 뱃속의 황금을 꺼내야겠다는 생각까지 든다.

답답하게 돌아가는 통신요금 인하 공방을 보면서 뜬금없이 황금알 거위에 대한 엄마의 해석이 떠오른다. 황금알 낳는 거위의 뱃속에는 황금이 없다.
황금은 거위가 살아 건강하게 생체활동을 해야 하루에 하나씩 만들어지는 것이다.

기업이 경영활동을 통해 주변산업을 성장시키는 것. 이익을 내면서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것. 세금을 내는 것. 이 모든 것이 기업이 건강하게 살아 생체활동을 하면서 생겨나는 알이다.


통신회사가 지금 정부에 팔이 비틀려 국민 전체에게 한달 1만1000원씩 요금을 인하하고, 저소득층 통신복지를 실현한다고 치자. 그러고 나서 적자기업으로 추락해 처리곤란한 지경이 되면 누가 제일 큰 손해를 보게 될 것인가 먼저 생각해 보자.

황금알은 거위가 건강하게 살아있을 때만 생산된다는 우화의 교훈을 다시 생각해봤으면 한다.

cafe9@fnnews.com 이구순 정보미디어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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