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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르켈 4연임 성공] 별명으로 살펴본 메르켈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09.25 10:18

수정 2017.09.25 10:18

'엄마, 나의 소녀, 독일의 대처, 학습기계, 플립플로퍼...'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에게 그동안 붙었던 별명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대표적인 것은 '엄마(Mutti·무티)'다. 애초 이 별명은 메르켈 총리를 모욕하기 위해 처음 사용됐으나, 메르켈 총리와 지지자들이 이마저도 끌어안으면서 도리어 애정어린 별명이 됐다.

■국민에겐 든든하고 소탈한 '엄마'
무엇보다 '엄마'와 같은 그의 실용주의 리더십은 이제 유럽 무대에서 지배적인 목소리가 됐다. 유럽연합(EU)과 미국 간에 중단됐던 범대서양무역투자협정(TTIP) 협상 재개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에게 당당하게 요구하는 한편, 브렉시트(영국의 EU 탈퇴)를 앞둔 영국에도 "EU 시민들의 이민에 제한을 가하면 상응하는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라고 엄포를 놓기도 했다.



뿐만 아니라 소탈하면서도 솔직한 그의 성격도 '엄마'로서의 매력을 배가시켰다. 최근 메르켈 총리는 독일 어린이 기자들과 함께 하는 자리에서 '인생에서 가장 괜찮았던 순간이 언제인지'를 묻는 질문에 "남편(요아힘 자우어)을 알게 됐을 때"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자우어는 메르켈 총리의 두번째 남편으로, 베를린 훔볼트 대학교의 양자물리학 교수로 재직 중이다.

뿐만 아니라 올해도 메르켈 총리가 5년 연속 같은 옷을 입고 남편과 휴가를 떠난 모습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심지어 휴가지도 9년째 같은 이탈리아 북부 산악 휴양지 쥐트티롤 줄덴이다.

■콜 전 총리에겐 '나의 소녀'
메르켈 총리는 1954년 함부르크에서 루터교 목사의 딸로 태어나 생후 한달 만에 동베를린 근교 템플린으로 이주해 그곳에서 성장했다. 라이프치히 대학에서 물리학을 전공한 뒤 동베를린 물리화학 연구소에서 일했다. 첫 남편인 물리학자 울리히 메르켈과는 1977년 결혼 후 5년만에 이혼했다.

정치 입문은 1989년 동독 민주화 운동단체에 가입하면서부터다. 1990년 동독 과도정부 대변인 서리로 임명된 뒤 통일후 첫 총선에서 연방 하원의원으로 당선됐으며 헬무트 콜 전 총리의 깜짝 발탁으로 1991년 여성청소년부 장관에 오른다. 멘토이자 '정치적 양부'였던 콜 전 총리는 그를 '나의 소녀'라는 별명으로 불렀는데, 그때 메르켈 나이 37세였다.

이후 메르켈은 1994년 환경부 장관, 1998년 기독민주당 사무총장, 2000년 기민당 최초 여성 당수 겸 원내총무에 오르는 등 경력을 쌓아나가다가 2005년 총선에 승리하게 돼 처음으로 총리직에 오른 후 지금까지 4연임하게 됐다.

■해외선 '독일의 대처', 언론에선 '학습기계·플립플로퍼'
한편 해외에서는 메르켈 총리를 '독일의 대처(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라고도 부르기도 했다. 11년간 총리직을 지켰던 대처 전 총리처럼 장기집권하고 있는데다 '철의 여인'과도 같은 강직한 모습 등에 힘입었다.

언론은 그를 '학습기계(learning machine)' 또는 플립플로퍼(flip-flooper·쉽게 입장을 바꾸는 사람)'라고도 부르고 있다. 영국주간 뉴스테이츠먼은 최근 메르켈 총리가 실수를 인식하고 이로부터 신중하게 배울 수 있는 능력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일례로 지난 2015년 말 메르켈은 난민 수용 정책을 강행했지만 이로 인해 반이민 시위 등 논란이 생기고 지지율이 떨어지자 지난해 12월 당 연례회의에서 "2015년 여름과 같은 상황을 반복해서는 안된다"고 말하며 박수를 받기도 했다. nvcess@fnnews.com 이정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