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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뭐라고 해도 반도체, 해야겠습니다!"
세계적으로 플래시 메모리(반도체)가 처음 상용화되기 시작한 건 1980년대 초였다. 당시는 우리나라가 반도체 산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든 것도 이 즈음이었다.
지금 생각하면 '반도체 산업에 뛰어드는 게 그렇게 오래 고민할 일일까?' 싶지만 당시 삼성의 반도체 산업 진출은 그야말로 운명을 걸고 온 힘을 기울여 겨루는 마지막 한판 승부였다. 국내외 경제 상황에 워낙 변수가 많아 기업 입장에선 혁신적 방향 설정을 고민해야 하면서도 무작정 투자만 할 순 없는 여건이었기 때문이다.
1970년대는 반도체 기술 상용화가 본격적으로 진행돼 선진국 시장을 중심으로 전자시계·트랜지스터 등 소형 전자제품 보급이 급속도로 확대되던 때였다.
무엇보다 세계 반도체 기술의 양대 산맥이었던 미국과 일본의 '기술 문단속'이 더없이 철저했다. '반도체는 대단한 물건'이란 소문만 무성할 뿐 제품을 구입하는 것조차 쉽지 않던 시절이었다. 당연히 자체 기술 개발은 엄두조차 못 낼 상황. 관련 연구 결과나 업종도 전무하다시피 해 국산 반도체 생산은 흡사 '동네 대장간에서 최신형 자동차를 만들어내는 일'만큼이나 불가능해 보였다.
설령 기술을 갖췄다 해도 반도체 생산은 일개 기업이 감당하기 어려울 정도로 엄청난 규모의 설비 투자를 필요로 한다. 당시는 두 차례의 석유 파동으로 세계 경기가 바닥을 치던 때였다. 이런 상황에서 반도체를 자사의 주력 사업으로 추진하겠다는 이병철 선대 회장의 결단은 훗날 사람들이 '2·8 도쿄 선언'이라고 부를 정도의 역사적 사건이었다.
사실 이 결단 뒤엔 이건희 당시 삼성전자 부회장의 노력이 숨어 있었다. 이 부회장은 몸소 전 세계를 누비며 반도체 석학들을 만났고 그들에게서 입수한 자료를 분석, 사업 윤곽을 잡았다. 그리고 불과 30년 만에 삼성전자는 전 세계 반도체 최강자 위치에 올랐다.
1983년 4월, 삼성전자는 반도체 사업의 첫 번째 아이템으로 D램을 선정했다. 자체적으로 첨단 기술을 개발하기 위해 미국에 현지법인을 세웠고 해당 분야 연구개발에 종사 중이던 글로벌 인재 영입에도 활발하게 나섰다. 미국에서도 손꼽히는 한국인 연구자들이 현지의 훌륭한 연구·생활 조건을 버리고 오로지 "애국하겠다"는 일념으로 속속 귀국했다.
"만세!" 어느 날, 흰 가운 차림의 한 사나이가 실험실을 뛰쳐나오며 환호했다. 이후 실험실에 틀어박혀 몇 날 며칠을 보낸 게 분명한, 꾀죄죄한 행색의 사람들이 서로 얼싸안고 뛰기 시작했다. 삼성전자의 전신인 삼성반도체통신 이상준 박사팀이었다. 이 박사팀은 미국 마이크론사에서 넘겨받은 칩을 토대로 6개월간 밤낮 없이 씨름한 끝에 64K D램 자체 개발에 성공했다. 반도체 이론의 기초부터 익혀가며 고생한 결과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미국과 일본을 포함한 전 세계가 경악했다. 동일 기술을 개발하는 데 일본은 꼬박 6년이 걸렸기 때문. 삼성전자는 단 6개월 만에, 그것도 미국이나 일본보다 훨씬 안정적 수준으로 기술 개발에 성공했다.
1992년은 삼성전자가 세계 D램 시장을 정복한 기념비적 해였다. 후발국의 설움을 딛고 무수한 난관을 극복, 마침내 첨단 반도체 기술로 세계 1위에 오른 것이다. 반도체 산업 진출을 선언한 지 불과 10년 만에, 그것도 '첨단 중 첨단'이란 메모리 분야에서 세계 정상에 우뚝 선 건 신화의 본격적 시작을 알리는 일종의 '사건'이었다. 삼성전자는 이후 단 한 차례도 추월을 허용하지 않는 '불패신화'를 이어가고 있다. 삼성 반도체는 1993년 메모리 전체, 1995년 S램, 2000년대 들어선 플래시 메모리뿐 아니라 디스플레이 구동 칩 등 비메모리 분야에서 각각 세계 1위를 기록했다.
일취월장하는 실력에 더해 운도 따랐다. 대표적인 게 1990년대 있었던 통상마찰 사건이었다. 당시 미국 마이크론사가 국내 반도체 기업 3사를 상대로 제기한 반(反)덤핑 소송에서 삼성은 '80% 덤핑'이란 예비 판정을 받았다. 하지만 백방으로 노력한 끝에 5개월 후 최종 판정에선 '반덤핑 관세율 0.74%'의 성과를 받아들 수 있었다. 미국 반도체 산업이 일본이란 '막강 라이벌'을 만나 흔들리는 상황에서 '한국을 키우는 게 오히려 일본 견제에 득이 될 수 있다'는 미국 측 판단이 작용한 결과였다.
1994년 9월, 모 일간지에 특이한 전면 광고 하나가 실렸다. "한민족 세계 제패, 월드베스트 정신으로 해냈습니다" 삼성전자가 세계 최초로 256M D램 개발에 성공했다는 사실을 알리는 내용이었다. 광고 한복판엔 구한말 당시 태극기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다. 김광호 당시 삼성전자 사장은 "적어도 D램 기술에선 한국과 일본의 관계가 (양국이 평등했던) 구한말 이전 상태로 돌아갔다는 사실을 암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사실 '평등 이상'이었다. 삼성전자의 D램 개발은 당시 시장을 지배하고 있던 일본 업체들과의 기술 격차를 6개월 이상 벌린 획기적 사건이었다. 이로써 삼성전자는 완전한 기술 자립을 이뤄 '좇는 자'에서 '이끄는 자'로 지위가 격상됐다.
courage@fnnews.com 전용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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