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서 저출산 문제를 마주하다③
“기저귀, 분유 값에 아이 보육원 비용으로만 한 달에 20만엔(한화 약 196만원)이 들어요. 비싼 인터(영어유치원)는 엄두도 못내요.”(만3살 아이를 키우는 일본 워킹맘)
아이를 낳아 기르면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은 가격을 매길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키우고 가르치는 비용이 감당하기 어려운 것은 현실입니다.
저출산의 가장 큰 원인이기도 한 육아비용. 이것을 고민하는 것은 한국 부모든 일본 부모든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아베 내각은 육아와 교육에 대한 불안 요소를 줄여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고 개인 소비 확대를 이끌어내겠다는 구상입니다.
일본 내각부 관계자는 “일본 가정 70~80%가 아이를 늘리지 않는 이유로 ‘비용 문제’를 꼽았다”며 “육아 비용이 가계를 압박하고 있어 이를 해소해 주는 것이 중요한 포인트”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오늘(9일) 베일에 싸였던 무상 유아교육안이 발표됐습니다. 8000억엔(약 7조8643억원)을 들여 3~5세 보육원을 전면 무상화하는 방안으로 일본 정부는 약 200만명의 어린이가 혜택을 볼 것으로 기대했습니다. 아울러 0~2세 아동은 100억엔(약 983억원)을 들여 연수입 260만엔(약 2887만원) 미만의 세대에 한정해 보육 무상화를 결정했습니다.
그런데 일본 사회에서는 아베 내각의 무상 유아교육 정책이 미래 세대에게 폭탄을 떠넘기는 재앙이라며 정책의 비용 효과도 불투명하다고 지적합니다.
이런 지적이 나오는 이유는 일본의 재정이 무상 유아교육을 견딜 만큼 건전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일본은 우리가 생각하는 만큼 부자가 아니어서 이렇게 돈을 쓸 수 없다는 것입니다.
일자리가 넘쳐나고 경기가 호황인 것처럼 보이는 일본 정부의 재정이 건전하지 않다는 지적이 낯설어 보이기도 합니다만, 사실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아베 내각의 ‘사람만들기 혁명’이 발표되면서 계획에 차질이 생겼습니다. 재정건전화를 위해 사용해야 할 4조엔(약 39조원) 중 1조7000억엔(약 16조원)이 유아교육 무상화가 포함된 ‘사람만들기 혁명’ 비용으로 전환됐기 때문입니다.
결국 유아교육 무상화로 인해 일본 정부의 재정난이 심화될 것이라는 지적을 낳고 있는 것입니다.
아베 내각의 말바꾸기에 경제계는 물론 자민당마저도 적지않게 당황하는 모습입니다. 일본 정계의 아이돌이자 ‘포스트 아베’로 불리는 고이즈미 신지로 수석 부간사장은 아베 총리의 독단적인 모습을 공개적으로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무상 교육안이 발표되자 형평성 문제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는 소득제한 없이 모든 3~5세 아동의 유치원 보육 무상화를 결정했습니다. 이렇게 될 경우, 무상화의 혜택은 고소득자에게 집중되게 됩니다. 저소득 가정과 편부모 가정의 경우, 이미 정부에서 보육원 및 유치원 비용의 일정 부분을 지원 받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녕 혜택이 필요 없는 고소득층 가정에게 비용의 대부분을 쓰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이 ‘오늘의 축복’일지, ‘내일의 재앙’일지 당장 답을 내리기는 힘들 것 같습니다.
단 저출산 문제는 한 가지를 고쳐서 해결 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한국이든 일본이든 아이를 키우기 힘든 사회를 살고 있는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정부의 무책임한 탁상공론 정책이 아닌 부모들의 소리에 귀 기울인 정책이 절실해 보입니다.
sijeon@fnnews.com 전선익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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