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 검찰·법원

통계 안 잡히는 낙태..전과자 '딱지' 붙는 여성·의사 증가

조상희 기자

파이낸셜뉴스

입력 2017.11.12 15:31

수정 2017.11.12 15:31

#1.올해 결혼 10년차에 접어든 30대 워킹맘 김경애씨(가명)는 결혼 3년 만에 어렵게 아이를 가졌다. 그는 7살 난 어린 딸을 볼 때 이따금 가슴이 아려온다. 신혼 때만 해도 '딩크족(자녀가 없는 맞벌이 부부)'을 꿈꿨던 김씨는 뜻하지 않은 임신에 불법인줄 알면서도 낙태를 심각하게 고민했었다. 김씨는 예쁘게 자라는 아이를 볼 때마다 그런 생각을 했다는 자체를 후회하고 있다.
#2.가출한 후 미성년자인 남자친구와 동거해온 20대 여성 이은아씨(가명)는 어느 날 임신사실을 알게 됐다. 이씨는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었지만 배가 불러오면서 더 이상 일을 할 수 없게 되자 낙태를 결심했다.
이씨는 학창시절 엄마에게 강제로 끌려가 2차례나 낙태한 경험이 있었다. 그러나 이씨는 시민단체와 상담을 통해 보호시설에 들어가기로 마음먹었고 몇 주 후 건강한 딸을 낳았다.

혼전임신을 터부시하는 사회적 통념에 따라 낙태수술은 불법이지만 암암리에 행해졌다. 매년 수십만명의 여성들은 전과자 꼬리표가 붙을 수 있다는 우려에도 자의반 타의반 낙태를 선택하고 있는 실정이다.

■은밀한 낙태 수술..실제는 공식 통계치 '3배'
12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인공임신중절은 2005년 34만2000여건에서 2010년 16만9000여건으로 줄었다. 수치상으로는 5년 만에 낙태가 절반으로 급감한 것처럼 보이지만 전문가들은 2009년부터 불법 낙태 단속이 강화되면서 수술이 음성적으로 행해져 통계에 드러나지 않는 것이라고 지적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에서 올해 초 발표한 '인공임신중절 국내외 현황과 법적 처벌의 문제점' 보고서에 따르면 실제 인공임신중절은 하루 3000명 꼴로, 2005년 보건복지부가 조사한 수치의 3배가 넘는 것으로 추산된다.

대한산부인과의사회 관계자는 "낙태가 불법이다 보니 병원 측에서 공개를 꺼려 조사하는 기관마다 통계가 들쑥날쑥"이라며 "낙태가 합법화된 일본 의사회에서도 낙태 수술 건수를 물어보면 1건도 없다며 대답을 기피한다. 의사 입장에서는 제대로 된 응답을 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복지부 관계자는 "낙태는 어느 나라나 과소추계 된다는 이야기가 나온다"며 "개인의 민감한 사생활 때문에 감추는 것을 감안할 수 밖에 없다"고 전했다.

■낙태 둘러싼 논쟁의 원인은 '형사처벌'
낙태를 둘러싼 논쟁이 끊이지 않는 가장 큰 이유는 낙태가 범죄이기 때문이다. 형법 269조는 여성이 약물 기타 방법으로 낙태할 때는 1년 이하의 징역 또는 200만원 이하의 벌금, 형법 270조는 낙태한 의사에 대해 2년 이하의 징역에 처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른바 '낙태죄'다. 다만 모자보건법에서 유전적질환이나 성폭력에 의한 임신, 4촌 이내 친족간의 임신 등 지극히 예외적인 경우에 한해, 그것도 24주 이내에서만 낙태가 허용되고 있다.

대검찰청에 따르면 낙태죄로 기소된 건수는 2014년 9건, 2015년 21건, 지난해 32건, 올해는 9월까지 10건에 이른다. 낙태 수술이 줄어든다는 통계가 무색하듯 관련 혐의로 재판에 넘겨지는 인원은 늘고 있는 것이다.

낙태죄로 인한 법원의 처벌 건수도 증가세다.
법원행정처에 따르면 낙태죄에 대해 1심 법원이 유죄로 판단한 사건은 2014년 8건, 2015년 14건, 지난해 24건으로 지속적으로 늘었다. 특히 지난해는 낙태죄로 실형을 선고한 사례도 2건(의사)이나 나왔다.


대형로펌의 한 변호사는 “낙태는 대개 태아의 아빠가 허락없이 낙태수술을 했다고 의사를 고발하는 경우에 한해 수사 대상이 된다”며 “의사는 대부분 기소유예나 집행유예 처벌을 받고 산모는 이보다 낮은 처벌이 이뤄지고 있다”고 전했다.

mountjo@fnnews.com 조상희 이진석 이진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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