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발생한 경북 포항 지진으로 내진설계에 대한 중요성이 날로 강조되고 있는 가운데, 한국형 지진의 특성에 맞춰 저층 건물에 대한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해야 한다는 전문가들의 목소리가 높지만 정작 내진설계 전문가가 턱없이 부족하다는 지적이 제기되고있다.
22일 국회와 관련업계에 따르면 지난 2월 개정된 ‘건축법 시행령’에 따르면 2층 이상 건물이거나 연면적 500㎡(151.25평) 이상의 건물은 반드시 내진설계를 갖춰야 한다. 이외에도 높이가 13m 이상인 건축물, 처마높이가 9m 이상인 건축물 등도 포함돼 있다. 이에 따라 건물의 설계를 맡는 건축사는 2층에서 5층 건물도 내진설계를 하고 ‘구조 안전 및 내진설계 확인서’(이하 내진설계 확인서)를 관할 지자체에 제출해야 건축 허가를 받을 수 있다.
반면 6층 이상의 건물은 내진설계 전문가인 건축구조기술사들이 건축사를 돕는 방식으로 참여한다.
내진설계 확인서는 건축물의 밑면전단력(지진이 나 건물이 압력을 받을 때 측면이 얼마나 흔들릴지를 진단), 최대 층간 변위(지진이 발생했을 때 변형 정도를 진단) 등을 구조공학적으로 계산해 작성하는데 내진설계를 했음을 수치로 써놓은 서류다.
문제는 대다수 건축사가 건축 구조공학에 대한 전문지식을 갖춘 사람들이 아니라는 점이다. 건축사는 5년제 건축학 인증대학에서 건축설계에 대한 교육을 이수한 뒤 시험에 합격한 설계 전문가로서 내진 설계의 근간이 되는 건축구조 공학에 대해선 전문 지식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럼에도 중소 건설회사들이 건축구조기술사에 감리를 의뢰하지 못하는 데는 과다한 비용과 전문 인력 부족 때문이다.
이같은 구조적 문제 때문에 2~5층의 저층건물은 비전문가의 내진설계로 지어져 안전 사각지대에 놓인다는 것이다.
현재 내진설계 전문가인 구조기술사는 전국적으로 1000명 안팎에 불과하다. 이에 반해 건축사는 1만2500여명에 달한다. 구조기술사가 연간 약 12만건 이상 허가대상 건축물 모두에 참여할 여력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실정이다. 때문에 다세대 빌라나 원룸 같은 저층 건물은 구조기술사의 감리를 거치지 않고 건축사가 설계부터 감리까지 전담하게 됐다.
이로 인해 건축사들은 구조설계 컴퓨터 프로그램을 통해 내진설계 확인서와 구조계산서를 만들어 제출한다. 여기에도 프로그램이 정상치를 벗어나거나 오류가 발생해도 건축사가 제대로 된 검증을 내리긴 역부족이다.
저층 건물에 대한 내진설계 기준을 강화해야 해야 할 이유는 또 있다. 우리나라는 땅을 조금만 파면 암석이 나올 정도로 토양층이 얕아 고주파 지진 발생 비율이 높다. 특히 10Hz 이상의 고주파 지진은 저층 건물에 더 큰 피해를 준다. 지난해 발생한 경주 지진의 경우 한옥과 저층 주택에 큰 피해를 줬다는 점이 이를 반영한다.
대한건축사협회 측은 건축사 또한 건축사법에 따른 검증자격을 거친 건축설계·감리 전문가로서 구조에 관한 일정 이상의 지식을 갖추고 있어 문제 될게 없다는 입장이다. 학계에선 오래전부터 내진설계를 포함하는 ‘구조안전확인’ 및 ‘구조설계’의 책임주체를 건축구조기술사로 개정해야 한다는 주장을 지속해왔다.
박홍근 대한건축학회 서울대 교수는 “내진설계를 비전문가가 수행하고 법적 책임을 지는 나라는 한국밖에 없다”면서 “미국의 경우 민관합동 설계소속 감리원이 다수 저층 건축물의 공사품질을 감리감독하는 등 공동 현장감독체제를 갖추고 있다”라고 밝혔다.
demiana@fnnews.com 정용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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